낙동강 1300리 물길 중 가장 아름다운 상주
2019-09-26 18:43:20
사벌국과 견훤의 고장 … 경천대서 퇴강성당서 바라보는 길지

어느덧 가을이 깊었다. 천지사방이 가을빛으로 가득한 이즈음이다. 백두대간 동쪽 자락에 안긴 상주는 어딜 가나 산과 골이 앞을 막아선다. 두 가닥 혹은 한 가닥 길은 산과 골을 가로지르며 빼어난 경치를 우리 앞에 안겨준다.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리 물길은 상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유장한 물길의 한가운데인 상주 사벌면 퇴강리는 예천군·문경시와 맞닿아 있다. 삼국시대 초기 사벌국(沙伐國)이 있던 곳으로 잠시 백제에 속하기도 했다.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도 상주 사람이다.

낙동강은 상주땅을 적시면서 숱한 비경을 만들어놓았다. 퇴강리 낙동강변 조암산 자락 아래에 들어선 퇴강성당(退江聖堂)은 63년의 역사를 지닌 경북 북부 지역 천주교 신앙의 산실이다. 상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교당으로 고딕 양식의 내부 모습이 검소하고 단아하다. 퇴강성당이 있는 곳은 옛날 ‘물미’라 불리던 곳으로, 성당이 세워질 당시 이곳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한다. 낙동강 물이 밀려나는 지역이어서 퇴강 또는 물미라고 부른단다. 북쪽으로 임금바위가 있는 군암산이 감싸고 있어 풍수상으로도 길지(吉地)에 속한다.
낙동강을 굽어보는 비경이 뛰어난 경천대(擎天臺)도 지척에 있다. 경천대로 가기 전, 충의사에 잠시 들러본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 ‘육지의 이순신’으로 불리는 정기룡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당 옆에 있는 유물전시관에서 그의 사상과 일생을 더듬어볼 수 있다.
5분 거리에 있는 화달리 3층석탑(보물 제117호)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9세기 통일신라 때 만든 것으로 1972년에 탑 전체를 해체 복원했다. 하층 기단을 생략하고 탑신부에 좌불상이 얹혀 있는 모습이 안정감을 준다.
3층석탑 옆에 있는 전사벌 왕릉은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8명 중 다섯째 아들인 박언창(朴彦昌)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경명왕은 언창을 사벌대군(沙伐大君)으로 책봉하고 견훤을 격퇴하라고 명했으나 견훤이 합천·고령·영천·선산 등을 점거해 경주가 고립되자 상주를 사벌국이라 칭하고 스스로 왕이 돼 11년간 통치하다가 견훤의 침공을 받아 929년(경순왕 3년)에 패망했다고 한다. 사벌국왕릉 사적비와 신도비는 상산 박씨 문중에서 세운 것이다.
경천대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우거진 노송과 깎아지른 절벽, 기이한 모양의 암석, 그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절경이다. 경천대의 또 다른 이름, 자천대(自天臺)는 하늘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강 건너로 보이는 모래사장이 햇살에 반짝인다.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이 그의 용마와 함께 뛰놀던 곳이라 한다. 경천대 한쪽에는 정기룡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말먹이통(구유통)이 남아 있다.
도보길(일명 MRF 이야기길)도 뚫렸다. 낙동강을 따라가는 이 길은 산길(Mountain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이 적당히 어우러져 걷는 재미가 아주 좋다. 걷기가 여의치 않은 여행객들을 위해 자전거길도 만들어 놓았다. 낙동강 상주보 쪽에서 도남서원(道南書院)을 지나 비봉산을 끼고 경천대-매협리(낙동강 둑길)-상풍교-퇴강리(퇴강성당)-낙동강 700리 표지석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고 전망대도 갖춰 놓았다. 특히 비봉산 정상의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발 아래로 낙동강이 펼쳐져 풍광이 그만이다. 비봉산 전망대에서 경천대까지는 3~4시간이 걸릴 만큼 짧지 않은 거리지만 우수 어린 가을 경치를 대하노라면 발걸음이 가볍다.
지나치기 아쉬운 곳들

낙동강변에 들어선 도남서원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서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누각 정허헌(靜虛軒)에 올라서면 낙동강 줄기가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2차에 걸쳐 복원된 서원은 정몽주·김굉필·정여창·이언적·이황·이준·노수신·유성룡·정경세 등 아홉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
상주는 이웃한 안동과 함께 유교문화의 전통이 강한 고장이다. 도남서원 외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서원이 무수히 많다. 도남서원과 우산서원 등은 동학운동 당시 민심이 동학으로 쏠리자 이를 조직적으로 배척했다. 유림은 동학을 허무맹랑한 사도(邪道)로 규정하고 전통 신분 질서를 지키지 않는 집단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았다.
도남서원 근방에는 자전거박물관과 상주보,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이 있다. 자전거는 상주의 명물이다. 상주는 시 전체가 평평한 분지 지형으로 경사가 완만해 자전거 타기에 적격이다. 자전거 보급률과 수송 분담률도 단연 전국 1위다. 자전거를 형상화한 박물관에 들어가면 다양한 자전거가 전시돼 있다. 관람객을 위해 다양한 자전거를 준비해 놓고 무료로 빌려준다.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환경부 산하 담수생물 전문 연구기관이다. 유전자원은행 구축, 유용자원 배양기술 확보, 맞춤형 바이오산업 지원, 생물자원의 수장과 연구 등을 수행한다. 생물다양성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가족형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상주보 아래 ‘나각산 숨소리길’도 근사하다. 들길, 강길, 산길을 따라가는 이 길은 나각산(螺角山·해발 250m)과 낙단보, 낙동강 역사 이야기관과 이어진다. 나각산 테라스 전망대에 서면 낙동리 들판이 시원스럽다. 속리산에서 뻗어온 산줄기가 낙동리 마을에 이르러 뾰족한 산을 하나 만드니 나각산이다. 산 형상이 마치 소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농사 짓기 좋은 ‘삼백(三白)’의 고장

충북 보은군과 상주시에 걸쳐 있는 속리산에도 올라보자. 수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장각폭포에서 장각계곡(화북면 상오리)을 지나 천왕봉(해발 1057m)-문장대(1054m)를 잇는 산길은 장쾌한 능선이 압권이다. 장각계곡을 쩌렁쩌렁 울리는 6m 높이의 장각폭포는 시원스럽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하다. 절벽을 타고 세차게 흘러내리는데 폭포수가 떨어지는 용소(龍沼)는 금방이라도 용이 나올 것만 같다. 폭포 옆에 단정하게 자리잡은 정자(金蘭亭)는 폭포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장각폭포에서 길을 따라 동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큰 7층석탑 하나가 반긴다. 마을 이름을 딴 오상리7층석탑(보물 제683호)이다. 원래 이곳은 절이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흔적이 묘연하고 석탑만 덩그러니 서 있다. 얼핏 보면 조금 불안정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속리산 들머리의 맥문동 솔숲도 볼만하다. 맥문동은 꽃이 다 져 아쉽지만 푸른 솔향이 코끝에 와 머문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솔숲 산책로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안정된다. 문의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 (054)533-3389.
상주는 예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삼백이란 흰 색을 띤 특산물로 쌀과 목화, 누에고치를 일컫는다. 요즘은 목화 대신 이 고장에서 많이 나는 곶감이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국내 곶감의 60%가 상주에서 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함창 나들목에서 가까운 명주박물관에 가면 친환경 섬유 소재인 명주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누에고치가 실이 되고 명주(비단·실크)가 되는 과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었다. 명주 섬유는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단백질이 주성분인데 보습성이 뛰어나 정전기 방지와 세균 번식 억제, 자외선 차단, 피부 보호에 좋은 소재다. 명주 주산지인 함창읍에는 박물관 외에 명주판매장, 명주제품 체험장, 장수직물공장, 홍보전시관을 둔 명주테마파크가 들어서 있다.

보은과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변에는 남장사(南長寺)란 고찰이 있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남장마을 노음산 밑의 이 절집은 비로자나철불좌상과 목각탱이 있는 보광전이 볼만하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듣는 풍경 소리가 고즈넉하다. 남장사를 병풍처럼 두른 노음산은 갑장산, 천봉산과 함께 상주3악으로 불린다.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공검지(恭儉池)는 삼한시대(서력기원 전후 추정)에 쌓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하나다. 벽골제(전북 김제시), 수산제(경북 밀양시), 의림지(충북 제천시)와 함께 삼한 또는 조선 4대 수리시설로 꼽힌다. 상주 사람들은 ‘공갈못’으로 부르는데 보존이 아주 잘 돼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둑길을 거닐며 연못을 볼 수 있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여기서 생겨난 ‘공갈못 노래’(일명 공갈못 채련요(採蓮謠)는 변형을 거듭하며 아래 지방까지 전파됐다.
김초록 여행작가 rimpyung74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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