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섬 여행 최적지, 임진왜란 역사적 현장 ‘거제·통영’
2016-01-11 09:36:36
통영 이순신공원, 한산대첩 현장 한눈에 … 해금강·외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둘러 쌓인 거제
지난해 크리스마스, 경남 거제도와 통영시에 가기 위해 KTX를 탔다. 통영에는 기차역이 없어 KTX를 타고 3시간 뒤 마산역에 도착해 렌터카를 모니 점심 쯤 통영에 도착했다.
통영은 이름 그 자체로 알 수 있듯 유서 깊은 군사도시다. 평소에는 교통량이 적어 별 문제가 없지만 휴가철이나 연휴에는 도로가 차량으로 꽉 찬다. 이날도 5㎞ 정도 이동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장 먼저 도착한 여행지는 이순신공원(옛 한산대첩기념공원)이었다. 1592년 8월 14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하고 해상주도권을 장악해 일본군의 식량보급로를 차단한 한산대첩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오른쪽에 칼집이 있어 장군이 왼손잡이냐는 논란이 있는 것과 달리 왼손에 칼을 차고 늠름한 모습으로 통영 앞바다를 내려본다.
동상 옆으로는 왕복 30분 정도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오르막 산책로를 따라 가면 남해 바다를 더 멀리 구경할 수 있다. 이어진 내리막 산책로를 이용하면 남해 바닷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수도권은 갑자기 맹추위가 찾아왔다지만 이 곳은 계절을 잊은 듯 따뜻해 두꺼운 외투를 벗고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하는 관광객이 다수였다.
통영을 대표하는 유적지는 뭐니뭐니 해도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다. 1604년(선조 37년) 설치돼 1895년 폐영될 때까지 292년간 경상·전라·충청의 삼도수군의 본영(현재의 해군본부)이었다. 초대 통제사는 이순신 장군이다. 통제영의 본영의 중심건물은 세병관(洗兵館)이다. 국보 305호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목조 건축물 중 바닥 면적이 가장 넓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로 단층 팔작집이다. 과거 지방관아 건물 중 최고 위치를 차지했다.
통영 전체를 내려보고 싶다면 미륵산(461m)을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미륵산은 통영항 남쪽의 미륵도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와 통영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미륵산 8부 능선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미륵산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용화사, 고려 태조 시절 도솔선사가 창건한 도솔암 등이 있다. 청명한 날엔 전망대에서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순신공원에서 15분 가량 차로 이동하면 동피랑마을에 도착한다. 이순신이 설치했던 옛 통제영의 동포루(망루)가 설치된 곳으로 언덕 끝에 동쪽 벼랑이 있어 이같은 이름을 얻게 됐다. 동피랑마을이 관광객에게 알려진 이유는 집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 덕분이다. 2007년 10월 한 시민단체가 ‘동피랑 색칠하기 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 미대 재학생과 개인 18개 팀이 참가해 벽화를 그렸다. 당시 옛마을은 철거 대상이었지만 벽화로 인해 관광객들이 몰려 들면서 마을 보존 여론이 형성돼 지금은 마을 꼭대기 3채만 헐고 나머지는 놔두는 것으로 결정됐다.
동피랑마을을 내려오면 통영중앙시장이 있다. 통영중앙시장은 입구부터 해산물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소 다소 비싼 가격으로 서울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도미회를 떠서 숙소로 돌아왔다. 펜션에 도착하니 을미년의 몇날 남지 않은 해가 바다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
다음날 거제도로 이동하기 위해 서둘렀다.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가 약간 흐렸지만 여행하기 좋은 날씨였다.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도로 옆엔 개나리도 피었다.
약 1시간 남짓 달리니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도(巨濟島)다. 거제는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12개 국가 중 독로국(瀆盧國)에 속했으며,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이르서야 지금의 이름을 명칭을 얻게 됐다. 고려시대 983년(성종2년)에 기성현(岐城縣)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부터 거제로 명칭이 굳혀졌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왜구의 침입에 자주 시달렸다. 고려말에는 왜구를 피하기 위해 거제도를 비워두기도 했다. 1414년(태종 14년) 경남 거창군으로 피난한 거제현과 거창군이 합쳐져 제창현(濟昌縣)으로 통합됐다. 1419년(세종1년)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정벌로 1422년(세종 4년) 왜구의 침입이 종식됨에 따라 1423년(세종 5년)에는 거제현(巨濟縣)으로 복귀했다.
1423년 축성된 거제읍성은 조정으로부터 고현성이란 이름을 받았고 과거 읍성 역할을 하던 사등성은 지위를 잃었다. 1489년(성종 20년)에 거제부(巨濟府)로 잠시 승격했다가 곧 현으로 환원됐다. 1664년(현종 5년) 고현성이 폐지되고 거제현아가 읍내면(지금의 거제면)으로 옮겨졌으며, 1711년(숙종 37년) 도호부로 승격됐다. 1895년(고종32년) 동래부 거제군(巨濟群)으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1592년(선조 25년) 5월 이순신 함대가 거제 옥포 앞바다에서 적의 함대를 포위, 섬멸하는 첫 개가를 올렸다. 반면 고현성이 함락됐고 원균의 오판으로 조선 수군의 몰락을 가져오게 된 1597년의 칠천량해전의 비극도 이 곳에서 빚어졌다.
거제의 첫 행선지는 ‘바람의 언덕’이었다. 이 곳은 KBS 인기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이 다녀가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이름에 걸맞게 바람이 많이 분다. 탁트인 남해를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람의 언덕 맞은편에는 신선대(神仙臺)가 있다. 과거 신선들이 놀던 자리라고 불릴 만큼 경치가 뛰어나다. 갓처럼 생겨 갓바위로도 불리며 벼슬을 원하는 사람이 여기서 득관(得官)의 제를 올리면 소원을 이룬다는 속설이 있다. 신선대 옆으로 50m 길이의 몽돌해변이 있다.
근처 와현모래숲해변 옆에 와현유람선터미널이 있다. 해금강과 외도로 향하는 배를 탔다. 2시간에 한 번씩 운행하고 오후 4시면 마감한다. 소형 유람선이라 날씨가 조금만 좋지 않아도 배가 뜨지 않는다.
해금강은 바다의 금강산을 뜻하는 말로 두 개의 섬이 맞닿아 있다.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됐으며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지형이 칡뿌리가 뻗어내린 형상이어서 갈도(갈곶도)로도 불린다. 해금강 최고의 비경은 십자동굴이다. 섬 안에 들어가 십자모양의 하늘이 보인다. 이밖에 사자바위, 부처바위, 촛대바위 등 기이한 암석이 늘어서 있다. 해금강에 이르는 유람선은 이 곳 외에도 도장포, 학동, 구조라, 해금강 등의 터미널에서 탈 수 있다.
해금강을 들른 유람선은 외도로 향했다. 거제도와 4㎞ 정도 떨어져 있는 섬으로 동도와 서도로 나눠져 있다. 서도에는 약 1만여평의 식물원과 편의시설이 조성돼 있으며, 동도는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서도는 유럽 지중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국적인 모습이다. 섬 내 수량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난해 난대 및 열대성 식물이 잘 자란다. 주변에 해금강 등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날씨가 좋은 날엔 홍도(거제), 대마도까지 관망할 수 있다.
과거 외도는 바위만 무성한 황폐한 무인도에 가까웠다. 1950년 광복 직후 8가구만 살고 있었으며 전기시설과 통신시설이 없었다. 변변한 정박시설도 없어 큰 배가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1969년 평안남도 순천 출신의 이창호 씨가 우연히 외도 주변에 낚시를 왔다가 태풍을 만나 우연히 외도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것이 인연이 돼 1973년까지 3년에 걸쳐 섬 전체를 구입했다. 이 씨는 외도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평생 외도 가꾸기에 전념했다.
외도는 1970년대 초반부터 개발됐다. 이 씨는 고구마가 심어진 밭에 감귤나무 3000여 그루와 편백 방품림 8000여 그루를 심고 농장을 조성했다. 이후 여러 실패를 겪고 농장 대신 식물원으로 변신시켰다. 이색적인 풍광이 서서히 알려지다가 2002년 종영된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회 배경 장소가 되면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방문하는 관광코스로 유명해졌다. 2003년 3월 1일 외도의 주인인 이창호 씨가 사망했으며, 2008년 1월 16일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거제도 동쪽의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면 나타나는 구조라도 명소로 꼽힌다. 조라는 자라의 목처럼 생긴 지형을 말한다. 조라목, 조랏개, 조라포, 목섬, 목리, 항리로도 불린다. 1470년 성종 원년 거제칠진(옥포진, 조라진, 율포진, 영등진, 거배량진, 지세포진, 장목진)의 하나로 조라진을 설치했는데 임진왜란 후 1604년(선조 37년)에 옥포진에 통합됐다가 1651년 효종 2년에 다시 돌아오자 구조라진으로 명명됐다.
구조라엔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곳에 집들이 모여 있다. 마을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는 해수욕장과 항구가 위치한다. 동피랑처럼 벽화가 골목 구석마다 그려져 있다. 대나무 숲길 옆으로 샛바람 소리가 나 관광객에게 신비감을 제공한다. 구조라해수욕장은 한국전쟁 후 포로수용소가 거제에 설치되면서 미군들이 이용했던 곳으로 1970년대 이후 알려지기 시작했다. 백사장은 길이 1.1㎞, 폭 30m로 거제의 여느 해수욕장과 달리 호수같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동쪽으로 망산,서쪽으로 수정봉,앞바다에 안섬이 자리잡아 경치가 수려하다.
인근의 학동 흑진주몽돌해변도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검은 몽돌로 이뤄져 있고 한려수도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거제도 공곶이엔 다랭이농장이 조성돼 수선화, 동백나무, 종려나무, 조팝나무, 팔손이 등 50여 종이 심어져 있다.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수선화가 만발한다. 공곶이는 1869년 병인박해(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가톨릭교도를 대량 학살한 사건)를 피해 숨은 윤사우 씨 일가의 은신처였다.
공곶이마을에서 예구마을 반대편 남쪽 방향으로 깊은 숲길을 걸으면 서이말(鼠耳末) 등대에 도착한다. 거제도 동쪽 끝단 쥐의 귀를 닮은 듯한 곳에 1944년 1월 설치됐다.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20초마다 한 번씩 20마일(37㎞) 밖으로 빛을 비춰 주변 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항로를 알려주고 있다. 백색 원형의 콘크리트구조물로 15m 크기이며 장승포항에서 해금강으로 향하는 유람선 경로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거제도는 크게 동부권, 서부권, 남부권, 북부권, 중부권 등으로 나뉜다. 북부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와 기록전시관이 위치해 있으며, 거가대교(거제도+가덕도)가 부산으로 연결된다. 중부권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거제박물관, 계룡산이 있다. 서부권에는 동계 전지훈련장으로 쓰이는 거제스포츠파크, 청마 유치환 생가, 산방산과 산방산비원 등이 있다. 남부권에는 해금강·바람의 언덕·신선대·외도와 함께 명사·덕원 해수욕장, 여차·홍포 전망대, 손대도(병대도) 등이 위치한다. 동부권에는 동백숲길이 아름다운 지심도, 공곶이, 능포양지암조각공원, 내도, 옥포대첩기념공원 등이 있다.
거제시는 이 중 외도·내도 비경, 여차·홍포 해안 비경, 계룡산, 해금강, 공곶이, 지심도, 학동흑진주 몽돌해변, 신선대와 바람의 언덕 등을 거제 8경으로 추천하고 있다.
정종우 기자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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