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3 14:37:40
이동규 수원 윌스기념병원 뇌신경센터 원장
‘치매’하면 흔히 떠오르는 게 ‘알츠하이머병’이고 다음으로 ‘혈관성 치매’를 꼽는다. 알츠하이머병은 대뇌 피질 세포의 퇴행성 변화, 신경독성 물질 축척 등의 병리학적 기전을 통해 인지기능의 장애를 일으키며,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두 번째로 흔한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뇌졸중 위험인자인 고혈압이나 흡연,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등을 관리해 치료 또는 예방해야 한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세 번째로 흔한 치매의 원인인 ‘루이소체’ 치매(Dementia with Lewy bodies, DLB)이다. 통계마다 차이가 있지만 치매 환자 5명 중 1명 정도가 루이소체 치매일 수도 있다.
단어 자체가 생소한 루이소체는 뇌의 피질(가장 바깥 부분) 속 신경세포 안에 생기는 나노미터(10억 분의 1m) 크기의 비정상적인 단백질 덩어리다. 이것이 뇌내에 쌓이면 인지기능의 심한 기복이나 파킨슨병 증상, 환시 등이 나타난다. 2016년 대한생물정신의학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치매 환자의 최대 31%가 루이소체를 지니고 있다.
루이소체 치매의 핵심적인 증상은 파킨슨병에 나타나는 증상들과 함께 인지기능저하, 환시, 렘수면행동장애(rapid eye movement sleep behavior disorder, RBD) 등이다.
이밖에 불안정한 자세, 반복적인 낙상, 실신, 과다수면, 망상, 기분장애 등이 동반된다. 치매는 공통적으로 인지기능의 저하가 나타난다. 루이소체 치매는 알츠하이머병과 다르게 병이 한참 진행된 후에야 뒤늦게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환시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느끼는 환각 현상이다. 반복적으로 헛것을 보는데, 다른 치매와는 달리 이런 증상이 초기부터 발생하고, 밤에 증상이 심해진다.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나 ‘먹을 것을 안주고 굶긴다’ 등의 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수면장애의 일종이다. 렘수면 기간에 근육의 긴장도가 증가하고 꿈과 관련된 과도한 움직임과 이상행동을 보이는 질환이다. 꿈을 꾸고 있을 때 현실에서도 꿈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증상이다.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치매 환자의 수면 행태를 비교 조사한 연구에서 전자는 수면장애로 인해 더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자주 깨며, 수면조절이 안 되고, 악몽과 혼수(정신 없이 잠이 듦)를 자주 경험한다고 보고돼 있다.
떨림, 근육 강직, 구부러진 자세나 다리를 끌면서 걷는 보행장애 등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파킨슨병인지 루이소체 치매인지 진단하기 위해 기준이 있다.
인지장애가 나타나기 전 적어도 1년 전부터 운동이상 증상이 있었다면 치매를 동반한 파킨슨병을,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게 1년 미만이라면 루이소체 치매로 진단한다.
자기공명영상(MRI)를 통해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 치매를 감별하기도 한다. 루이소체 치매는 해마의 용적과 내측두엽이 알츠하이머병에 비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현재 루이소체 치매를 완치시키는 치료는 없으나,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적인 약물치료가 있다. 약물치료와 병행하여 물리치료, 작업치료, 신체활동을 충분히 늘리는 운동치료 등이 도움될 수 있다.
치매는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가족들까지 힘들게 하는 질환이다. 루이소체 치매 역시 마찬가지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쥬만지’, ‘굿윌헌팅’ 등에 나왔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2014년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사후 부검 결과 루이소체 치매를 앓았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그가 아팠던 과정을 쓴 수필에는 루이소체 치매임을 초기에 제대로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고령의 어르신에게서 환시나 불안, 섬망, 기억력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치매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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