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5 01:00:13
팜파스 출판 ‘흔들리지 않고 ADHD 아이 키우기’ 표지
일곱살바기 늦둥이 아들이 130만원에 달하는 LCD-TV 액정을 TV를 산 지 한달 여만에 깨부셨다. 7년 전 당시 혼수로 장만한 360만원 상당 동급 TV를 작년 가을에 깨먹은 지 1년도 안 돼 두 대를 잡아먹었다. 합쳐서 500만원이면 웬만한 중견 직장인 한 달 월급이고, 저소득 노동자 기준 두 달 월급이다.
돈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함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으로 진단받은 아들이 최근 들어 치료 후 개선 정도가 약해진 것에 가슴이 답답하다.
아들은 다시는 TV를 깨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1m 남짓한 테이블에서 뛰어내리며 깃대처럼 세운 장애물 2개를 동시에 쓰러뜨려야 하는데 하나만 넘어지자 화가 나 권총 장난감을 아주 세게 TV를 향해 던졌고 불길한 퍽 소리와 함께 거액이 허공에 날아갔다.
놀이치료 선생님은 아직도 공격적 충동성이 제어되지 않았다며 크게 혼을 내고 불이익을 주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 했다.
지침대로 놀이치료 끝나고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에서 바이킹과 회전그네를 태워주는 것을 중단했다. 아들에게 네가 TV를 깨뜨려 놀이공원에 갈 수 없다고 일러줬는데 최근 두어 달 대여섯 번 탄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반응이 없다. 잘못을 뉘우치고 수긍하는 것일까. 유치원 교사나 태권도 선생님 모두 우리 아들더러 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데 일부러 행동을 엇나가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랬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부모 애정이 부족해서 아직도 ADHD 개선에 미흡한 점이 많다는 놀이치료 선생님의 지적이 목에 걸린다. 부정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기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평균 오전 3시까지 야근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족한 기획기사를 메우지 못한다.
아울러 놀이치료 선생님은 아들의 내면에 불안감, 열등감, 공포감 등이 혼재돼 있으므로 이를 해소해줘야 한다고 했다. 쓸데없이 “아빠는 돈이 없어”, “에헤 별로네”, “동생보다 못한데”, “까불면 경찰이 잡아간다” 등등의 말을 하지 말고 잘못한 게 있으면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일관성 있고 합리적으로 불이익을 주라고 했다.
아들은 뜨거운 것, 전기, 뱀, 강도나 폭력범, 경찰 등을 무서워한다. 경찰이 무섭다면서도 커서 경찰이 되겠다고도 한다. 전기에 가볍게 감전된 바 있어 화들짝 놀라면서도 전기충격으로 모기나 파리를 잡는 기구를 사달라고 떼를 쓴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쥐어주면 피하려 한다. 전부 공포감의 대상을 나름 극복해보려는 아들의 노력이다. 아들은 부모나 동생을 때리면서도 자기가 맞는 것은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열등감 하니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Othello)가 생각난다. 베니스의 장군이며 주인공인 오셀로는 무어인(아랍계)의 유색인종으로서 노예 시절 특유의 친화력과 근면성으로 발탁됐고 이후 전쟁에서 용맹스럽게 활약해 장군 자리에 오른다. 원로원(元老院)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받아 그를 아내로 맞는다. 그러나 오셀로의 부관(副官) 자리를 캐시오에게 내준 이아고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와 캐시오가 바람을 피웠다고 오해하도록 협잡하자 결국 오셀로는 질투심과 열등감에 사로 잡혀 아내를 살해하게 된다. 이아고는 백인이지만 약삭 빠르고 성실성과 능력이 결여된 악마적 캐릭터다. 현실세계에서 부관 자리에서 밀렸다고 그렇게 복수심을 갖기도 어렵지만, 오셀로는 정말 허망하게도 열등감과 질투심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들은 영어, 피아노, 축구 등 남과 비교해서 자기가 좀 밀린다고 생각하면 냉소적이 된다. 노력해서 경쟁에서 이기려하기보다는 회피하려 한다. 여동생에게 조금만 관심이 간다 싶으면 안달복달한다. TV를 깨부순 사고도 필자가 잠시 딸을 안아주면서 그림책을 읽어주던 아주 짧은 시간에 벌어졌다.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자꾸 분석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더 애정을 쏟으라고 한다. 맞다,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며 조건을 달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선생님과 돌보미보다도 맹목적인 부모의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로 나와 아내는 아기를 보는 시간이 짧다. 고작해야 평일은 하루에 두세 시간.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는 것도 맹목적인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결혼 후 얼마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고 서로를 존경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무시하고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게 섹스가 됐든, 쾌락이 됐든 조건없이 서로 애정을 퍼붓는 타인에게 몰입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불륜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저번에도 고백했듯이 아이가 ADHD인 것을 걱정하는 이유는 커서 공부를 못하고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봐서다. TV를 두 대나 깨뜨리는 것을 보니 전혀 나아지지 않으면 어쩔까 싶어 우울해진다. 또 그런 실망감이 누적돼 아들을 포기하는 순간이 올까도 걱정스럽다. 아직 그 정도에 이르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나의 인격수양과 포용력이 모자라 그 지경에 이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면서 ‘흔들리지 않고 ADHD 아이 키우기’에 나오는 조언을 정리해본다. 우선 ADHD 자녀가 보이는 한계를 바꾸려 하지 말고 수용하려 애써야 한다. 좀 미흡해도 과잉스럽다 싶을 정도로 칭찬해야 한다. 잘못한 것보다 잘한 면을 보려 애써야 한다. 잘하는 점을 먼저 보려 노력해야 한다. 잘하는 것에 ‘당연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작정하고 칭찬에 나서야 한다.
의도적으로 사랑을 결심해야 한다. ‘사랑 연습’을 죄책감으로 보지 말고 숙달되면 자연스런 사랑이 된다는 생각으로 실천해야 한다. 칭찬하는 순간은 자녀나 부모가 서로 즐거워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자녀도 비난 속에서 성장할 수 없다. 아이들의 성장은 부모의 사랑 에너지에 비례한다. 크게 된 사람은 부모의 ‘기돗발’이 유별나다. 부모가 무조건 먼저 맞춰서 사랑을 주자.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연구에 따르면, 영유아(2~5세) 중 2.4%, 소아(5~14세)에서는 5~10%, 청소년(15~19세) 4~8%, 성인(20~65세) 2~5%가 한 번이라도 ADHD에 걸렸거나 앓고 있는 중이다. ADHD 진단을 받는 평균 나이는 만 7세지만 약 3분의 1의 어린이는 만 6세 이전에 진단을 받는다.
ADHD를 방치하면 뇌의 주의력, 집중력을 담당하는 부위의 발달이 2~3년가량 지연돼 학업이나 사회생활에서 뒤처질 수 있다. 서구에서는 유치원생 ADHD 어린이게도 약물치료가 허용되지만, 한국은 6세가 넘어야 치료제(stimulant)에 대한 급여가 시작된다. 약을 먹으면 아이에게 각성효과가 일어나 주의력이 집중되지만 자율신경계 교감신경이 흥분돼 식욕이 떨어지므로 최대한 식사량을 유지하려 애써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늦게 오는 부모를 기다리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 시간을 놓치고 아침에 겨우 깨어나니 밥맛이 없고 굶은 채 유치원에 가기 일쑤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나에게 8시 출근, 7시 칼퇴근의 태평연월이 올 수 있을까. 이런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오로지 인식의 전환, 즉 ‘무한한 사랑 에너지의 집중 투하’만이 답이다. 그런데 오뉴월에도 한기를 느끼는 나의 육체적, 심리적 에너지로 어떻게 ‘사랑 에너지’를 증량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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