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2 12:23:31
장효준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놀이 공원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대표적인 기구들이 있다. 롤러코스터도 그 중 하나다. 요즘 Z세대들은 롤러코스터와 같이 빠르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경제·문화 속에서 유행에 열광하고 또 다른 유행을 찾아 떠나는 삶, 즉 롤코라이프를 즐긴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세대에 적응하기 위해 기업은 빠른 전략인 숏케팅을 활용한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전통적으로 의료는 보수적이며 충분한 근거가 있지 않으면 기존의 틀을 깨기 어려운 분야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의료 환경도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의료진들도 이러한 의료 환경에 적응, 대응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코로나 시대가 매우 예외적일만큼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나름 의료계 내에서 빠르게 바뀌어 나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폐암 분야다. 비흡연 여성 환자의 증가, 저선량 CT를 통한 폐암 검진의 활용으로 조기 폐암의 발견 증가 및 항암제의 신약 개발로 인해 진행된 폐암 환자의 생존률 증가 등이 두드러진 변화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폐암 환자들에 대한 치료 전략도 매우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해가고 있다.
이중 조기 폐암 환자를 맞았을 때 폐암을 수술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은 그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건강 검진을 시행해 폐암이 의심되는 작은 폐결절이 발견되면 그 결절의 모양·크기·위치·환자의 연령·폐기능·위험 인자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나올 수 있다.
폐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CT로 추적관찰을 하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조직을 얻어 암을 확진하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검진에서 발견된 작은 병변은 기존의 조직 검사 방법으로 접근이 어렵거나 진단적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따라서 CT나 PET-CT의 소견을 근거로 바로 폐절제술을 시행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다행히 폐결절이 폐의 표면 쪽에 가까이 있다면 폐결절을 포함해 폐 일부를 절제하는 쐐기절제술이라는 방법으로 수술실에서 폐암 여부를 확인하고 완치 목적의 추가적인 절제를 진행할 수 있으나 폐 결절이 폐내에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면 한쪽 폐의 1/3을 절제하는 폐엽 절제술을 통해야만 해당 병변이 폐암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암인 경우 폐엽 절제술이 합당하겠지만 절제 후 양성 종양으로 나오는 경우 환자나 의사 모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에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네비게이션 기관지 내시경을 활용하게 된다.
네비게이션 기관지 내시경은 환자의 폐 CT 영상을 통해 폐와 기관지의 3차원 지도를 만들고 주기관지에서 목표로 하는 병변까지의 경로를 알려주는 장비다. 마치 집 주차장에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입력하면 네비게이션에 자동차의 경로를 알려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환자의 기관지에 들어간 내시경 장비의 현재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목표 병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장비가 알려주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 후 비로소 원하는 조직 검사를 시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기 폐암뿐 아니라 기존의 조직 검사가 시행되기 어려운 부위인 폐 첨부, 심장 및 횡격막 근처의 병변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진단률이 70%에서 90%까지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으며 시술자의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최근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네비게이션 기관지 내시경 검체 획득률을 올리기 위해서 내동탐침을 이용해 조직을 얻는 시도를 하고 있다. 수술방에서 네비게이션 기관지 내시경을 시행할 경우 폐암 진단에 이어 완치 목적의 수술까지 한 번에 진행할 수 있어 장점으로 볼 수 있다.
네비게이션 기관지 내시경은 조직 검사 외에도 목표한 병변의 위치를 수술자에게 알려주는 방법으로도 활용된다. 폐 결절이 폐 표면에 가까운 곳에 있으나 결절이 작거나 또는 조직이 치밀하지 않는 경우에는 손이나 기구로 병변의 위치를 특정 짓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네비게이션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 목표 병변까지 내시경 장비를 위치시킨 이후 의료용 염료약으로 폐를 염색시키게 되면 수술시 해당 염료를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게 돼 촉감으로 느껴지지 않는 병변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은 조기 폐암에서 폐의 일부분만 절제하는 구역절제술 또는 쐐기절제술을 시행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전통적으로 폐암의 수술적 치료는 폐의 1/3을 절제하는 폐엽절제술이였다. 하지만 폐암 병변이 작은 경우 폐를 많이 절제하지 않고 부분만 절제해도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이 방법으로 작은 병변도 만져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찾아 쐐기절제술 또는 구역절제술을 통해 보다 빠르게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폐 절제 범위를 축소시킬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런 염료약의 단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폐내에서 번짐 현상이 발생하고 흡수되어 정확한 위치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염료약에 다른 성분을 혼합해 점도를 높여 지속 시간 및 번짐 현상을 최소화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앞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아가는 Z세대의 롤코라이프를 이야기한 것처럼 저선량 흉부 CT를 통한 조기 폐암의 증가에 맞춰 흉부외과 의사는 그 전략을 빠르게 수정해 진단과 수술까지 단기간 내 진행함으로서 폐의 절제 범위를 축소할 수 있으며 전체 폐암 환자의 생존률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사람은 폐암을 진단받은 환자다. 갑자기 한순간 폐암 환자가 돼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지지 않고 안전한 종착역까지 도착할 때까지 의료진들은 든든한 안전벨트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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