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2 16:14:47
정부가 지난 7월초 코로나19 백신 접종 일정과 방침을 공개하면서 섣불리 20~40대에게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히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필자는 지난 9일 느닷없이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나도 언론에 종사하지만 언론 보도를 그대로 믿을 것은 못 되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이 모자라 접수도 안 되고 언제 맞을 줄 모른다는 부정적 보도가 많아 필자는 급한 사람부터 먼저 맞으라는 ‘대승적’(?) 견지에서 7월 넷째주에 진행된 50대 초반(50~53세) 사전예약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주위에서 맞았다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면서 급기야 불안해졌다.
9일 질병관리청 모바일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사전예약 접수는 진즉에 끝나 접수 대상자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돌아왔다. 서울시 다산콜에 문의해보니 50대의 사전예약은 끝났고 언제 재개될 줄 모르니 잔여물량 백신을 맞아보라고 했다. 설마 잔여물량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용산구, 성동구, 서초구, 송파구 등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다. 부작용이 적어 누구나 희망하는 화이자와 차선의 모더나는 물론 없었다.
맞는 게 나을까, 버티고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기다려볼까. 결론은 신규 확진자가 하루 2000명 안팎을 오가는 엄중한 판국에 AZ가 유효성은 떨어지고 부작용 빈도는 상대적으로 높지만 접종을 미루다가 덜컥 걸려서 중증이 되고 이로 인해 폐섬유화라도 진행돼 폐기능이 현저히 나빠지고 그 결과 호흡기능이 약화돼 수명이 수년 간 단축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AZ 백신을 맞기로 했다.
더욱이 지난 6일엔 20대, 30대의 건장한 청년들이 중증 코로나19에 걸려 몇십 m 빨리 걷는 것도 어렵다는 사례를 기사로 쓰면서 폐섬유화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터였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돌파감염이 일어날 수 있으나 백신의 종류와 상관없이 사망이나 폐섬유화로 이어지는 경우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평소 알레르기체질로 못 먹는 과일이 복숭아, 자두, 살구, 사과 등 다양한 필자는 백신 부작용을 심히 염려했다. 야근이 잦아 기본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 더욱 걱정이었다. 참고로 알레르기체질과 아나필락시스는 개연성이 있을 듯하나 큰 상관관계가 없는 요소들이다.
필자가 경험키로 AZ 백신은 독감백신보다 약간 심한 정도의 부작용(불편함)을 보였다. 처음 5분간은 머리가 좀 멍했다. 몇 시간 지나니 피로했다. 평소에 쌓인 피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초저녁에 한 시간 여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다시 야근할 만했다. 새벽 3시에 귀가해 숙면을 취하고 8시에 일어나니 어깨가 뻐근하고 주사 부위에 통증이 있었다. 가끔 머리를 조이는 듯 쑤시는 듯한 두통이 있었지만 수초를 가지 못했다. 다음날은 이런 증상이 페이드 아웃되더니 지금은 멀쩡하다.
50대의 접종예약률은 84% 정도다. 나머지 16%는 백신반대론자이거나, 이미 맞았거나 걸려봤거나 한 사람들일 것이다. 16%에 해당한다면 AZ 백신이라도 맞아보길 권한다. ‘맞은 자’와 ‘안 맞은 자’의 거리는 한강 이남이냐 이북이냐에 따라 집값이 갈리는 것을 능가하는 큰 차이다. 맞은 자의 안심은 언제 걸릴지 모르는 불안에서 탈출시켜주고, 걸려도 크게 앓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문제는 1차 접종을 AZ 백신으로 맞은 사람이 2차는 다른 백신으로 맞길 희망해 ‘백신 편식’과 ‘백신부족난’이 심화될 것이란 점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결과 “AZ 접종 후 화이자 백신을 맞을 때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화이자-AZ 순 접종이었으며, AZ 백신만 두 번 맞는 게 가장 낮았다”고 한다. 필자도 당연히 2차에서는 화이자 백신을 맞고 싶다. 그러나 사전예약 트랙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또 백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교차접종이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는 지난 4~6월 전세계적으로 백신이 부족할 때 등장했다. 너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구해진 백신대로 맞으면 예방효과가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없다는 논리였고 이를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다만 전문가들 견해에 따르면 교차접종이 동일접종보다 확연하게 나은 이점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굳이 교차접종하겠다고 2차 접종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1차 접종 후 4~6주 안에 2차 접종을 하지 않으면 면역계의 항원 기억 및 항체 생성 능력이 감퇴돼 예방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항상 칼럼에서 주장하듯이 우왕좌왕하는 보건당국의 스탠스가 문제다. 작년 가을 사회적 거리두기 성공으로 신규 확진자가 정체 추세를 보이자 보건당국은 백신 확보에 등한시했다.
모더나는 작년 12월 스테판 반셀 CEO가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 후 4000만도스(2000만명분)을 올해 2분기부터 공급한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4번이나 약속을 펑크냈다. 2분기부터 공급한던 물량은 실제로 2분기가 끝나가던 올 6월에야 11만2000회분이 들어왔다. 다음으로 7월 중순 들어온다던 물량이 7월 하순으로, 이어 7월 하순 물량은 다시 8월로 밀렸다. 최근에는 8월말까지 공급한다는 850만회분을 그 절반 이하로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모더나가 우리 정부에 통보해왔다.
정부는 백신 부족난을 탓하고 AZ 백신 부작용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자 지난 7월초 20~40대에게는 AZ 백신을 맞히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AZ 백신을 자진해서 맞을 20~40대는 없다. 필자와 같이 좀 보편적이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AZ 백신을 찾을 터이니 AZ 백신은 남아돌 수밖에 없다.
AZ백신을 개봉한 당일 소진하지 않으면 폐기 처리해야 한다. 지난 2~4월에는 AZ 백신이라도 남보다 먼저 맞았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식의 변화로 AZ 백신은 ‘위험물’처럼 간주되는 상황이다. 반면 이른바 ‘최소잔여주사기’로 화이자 1바이알(5회분)을 6회분으로 나눠 주사하는 ‘마른수건 쥐어짜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성급하게 20~40대에게 ‘AZ 백신 배제론’을 설파한 것은 잘못이다. 전략적으로 큰 안목을 갖고 정책을 구사한다면 AZ 배제론을 대못 박듯이 할 필요는 없었다. 정부는 모더나 백신 공급 지연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자 뒤늦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이 가능한 연령대를 다시 젊은 층으로 확대할지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줏대 없는 행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가 백신을 맞은 병원의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접종 시작 이래 한 번도 백신 부족으로 쩔쩔 맨 적은 없었다”고 했다. 물론 주로 남아도는 것은 AZ 백신이었다. 더 알아보니 단골손님이 없는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병의원은 늘 백신에 여유가 있었고 주사를 맞기 위해 길게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백신 접종을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은 저마다 지역거점 병의원이었다. 고객들이 용케도 의사들의 출신 대학까지 알아서 신생 의대 졸업 의사들을 기피하는 것도 감지됐다. 암수술이나 심장, 관절, 뇌 수술이 아니면 굳이 동네 신생 병의원을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언론들도 이런 세세한 점을 파악해 아직도 백신을 맞고 싶어도 루트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정보와 지혜를 나눠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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