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6 10:58:53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의 중개수수료율이 0.9%에 달해 이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사진=픽사베이
두 달 전 필자가 조그만 사무실로 옮기면서 30여만원의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요구받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수수료 깎는 것에는 능숙한 편인 필자는 25만원만 내고 말았다. 나중에 법정수수료율대로 계산해보니 22만4000원이었다. 임대인은 30만원을 깎지 않고 다 냈다. 오히려 임차인인 필자더러 야박하게 이런 거 깎으면 안 된다고 그냥 30만원 다 주라고 채근했지만 되레 필자는 그런 거 간섭하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
임대인은 사무실이 안 나갈까봐 걱정했는데 선뜻 나가니 30만원 내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나보다. 하지만 양측으로부터 거의 60만원을 받았으면 거간료 치고는 센 편이다. 사무소를 답사하고 결심하고 계약서 쓰는데 걸린 총 시간이 1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노동하는 사람 중 고령의 비숙련공이 10만원 남짓, 한창 젊은 숙련공이 30만원을 받는 것에 비하면 중개수수료는 비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지금도 그 중개소 여자 사장님이 필자에게 ‘정말 가슴이 철렁해요’ ‘사장님 같이 막무가내로 깎는 분은 처음 봤어요’라며 경악했다는 듯이 몇 번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던 게 뇌리에 생생하다. 매너 없이 수수료를 깎는 필자의 모습이 ‘이 시대의 교양 없는 막가파’처럼 보였나보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필자가 1997년 숙명여대 인근에 자취방을 구할 때 냈던 중개수수료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악착 같이 내집을 마련해보겠다고 절약하던 필자가 수수료가 비쌌는지 쌌는지 둔감한 것을 보면 별 부담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울의 웬만한 20평대 아파트도 10억원 이상을 호가하고 그 영향으로 중개수수료가 1000만원을 넘어서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법정수수료율이 9억원 이상 아파트의 경우 0.9%다. 중개사가 무슨 대단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1%에 가까운 돈을 가져가는지 의문이다. 급매물을 소화해주거나, 헐한 부동산을 비싸게 중개하면 법정 수수료율을 초과하는 성공보수를 받는 것까지 감안하면 결코 적잖은 폭리다.
정부는 빗발치는 국민 불만에 현행 중개수수료 요율 상한을 0.6~0.9%에서 0.5~0.9%로 낮추고 9억원 초과~12억원 이하 구간을 신설해 0.7%로 낮추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 체감하는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필자는 새로 분양된 부동산만 사왔기 때문에 이런 중개수수료에 둔감했다. 하지만 신규 분양 부동산도 시행사가 직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분양대행사에 맡기기 때문에 상가의 경우 건물가의 2~5%를 대행사가 가져간다. 아파트는 워낙 인기 상품이라 1% 안팎으로 분양 대행사 수수료율이 정해진다.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의 중개수수료율은 2~6% 사이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는 관행일 뿐 법정 수수료율이 아니다. 미국은 로비나 무형의 중개, 알선에도 15%를 받는 나라이니 어쩌면 싼 수수료라고도 할 수 있다. 타사와의 경쟁 , 매도-매수자의 협의 아래 수수료율이 결정돼 6%를 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최저인 2%라 해도 한국의 최고 수수료율 0.9%보다 높은 수치다.
과거에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복덕방(福德房)이라고 불렀다. 원래 복덕방은 마을 당제를 지낸 뒤 제사음식을 나눠 먹으며 뒤풀이하던 장소였다. 또 조선시대 중기에는 객주가 다른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팔아주며 매매를 중개하며 수수료를 받던 장소나 행위를 복덕방이라 했다. 조선 후기에는 복덕방이 매점매석으로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방 전후부터 1980년대까지 집이나 땅을 매매하거나 임대차를 중매하는 곳을 복덕방이라 불렀다. 불교에서 착한 일을 짓고 그 보답으로 받는 복리(福利)를 복덕이라 한다.
1970년대 후반 전국에 부동산 투기 붐이 일자 ‘복부인’이란 신조어가 생겼고 복덕방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1984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입법되면서 복덕방은 부동산중개업으로 공식 용어가 바뀌었다.
복비(福費)는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좋은 집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사례였다. 후하게 쳐줘야 인심을 얻어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마을 어르신들도 사정이 딱한 사람은 막걸리 한 사발이면 됐고, 형편이 좋은 사람은 좀 더 받아내기도 했다. 인지상정을 바탕으로 한 거래여서 복비를 놓고 크게 다투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농한기에 아버지가 복덕방에서 동네 어른들과 화투를 치며 소일하는 게 싫었다. 어머니는 늘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며 나를 복덕방에 보냈다. 아버지는 거기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삼았다. 하지만 리얼하고 삶에 도움이 될 알찬 정보는 얼마나 접했을까.
아무튼 부동산중개업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야박해졌다. 단순 소개치고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원성이 2000년대 이후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미국처럼 사고에 대비한 보험도 들고, 계약금에서 잔금까지 모두 책임지는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2~6%에 달하는 미국 수수료율을 받아들이자는 말 밖에는 안 된다.
새로운 아파트나 상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입주하는 게 부둥산 중개사 사무소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싼 1층 임대료를 감당하니 건물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땅을 사서 건물을 올려 분양하는 시행사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하이어라키(hierarchy)의 최고봉이다. 그 다음이 분양받아 비싸게 임대를 놓는 건물주다. 다음이 분양대행사, 공인중개사, 인테리어업자 등이다. 흔히 건물주를 ‘조물주’보다 위에 있다 하는데 분양대행업자나 공인중개사가 ‘조물주’ 쯤은 될 성 싶다. 물론 입주자가 사업이 번창하고 화목하며 행복한 꽃길을 걷는다면 이야말로 최고의 복덕 수혜자이겠지만 말이다.
정부가 공인중개 수수료율을 낮춘다니 코로나19 여파로 올들어 5722곳이나 폐업했다며 중개사협회가 야단법석이다. 또 법정 수수료율대로 받는 곳은 거의 없고 실제로는 깎여서 수익이 떨어진다고 하소연이다. 게다가 단독으로 중개를 성사시키는 사람이 없어 수익을 나눠가져야 하고, 각종 부동산 중개 포털에 수수료도 내야 하니 남는 게 별로 없다는 해명이다.
그러나 올들어 신규 개업 공인중개소는 9266곳으로 폐업한 곳보다 훨씬 많다. 공치는 날이 많지만 운수대통하는 날에는 하루에 몇 천만원을 벌 수 있는 게 공인중개사의 사업적 운명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보유자는 40만명을 훌쩍 넘었고 이 중 4분의 3 이상이 장롱면허다. 그러나 10만명 이상이 현업에 종사하고 있고 신규 취득자도 계속 늘고 있다. 언변과 매너가 좋은 사람이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게 공인중개사업이다. 일류대를 나와 조직생활과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싫증을 낸 사람들이 중개사 업무를 꽤 한다. 20~30대 젊은 중개사 가운데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매물을 안내하는 사장님이 제법 있다.
필자가 듣기에도 어쩌면 다들 그렇게 매물 소개를 잘 하는지 모르겠다. 귀가 두꺼워야 과장 매물에 속지 않는다. 중개사의 현란한 설명은 그냥 참고사항이고 냉정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딱 보기에 나와 통할 것 같은 직관적인 매력을 갖춘(Feel이 꽂히는) 부동산을 찍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아파트 거래 수수료율은 매매가의 1%에 근접하며, 상가는 한 달 월세를 중개수수료로 내고 있고, 오피스텔이나 한두 칸 소형주택은 월세의 반을 수수료로 떼인다. 아파트는 워낙 거래액이 커서 문제이고, 상가·오피스텔·소형주택은 경제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나 서민에게 부담을 준다.
전월세의 거래액 산정 공식은 보증금(전세금)+월세×100이다. 이렇게 산출된 거래액에 0.4%를 중개수수료로 떼어간다. 거래액은 사실상 건물값에 준한다. 요즘 임대수익률이 4% 정도 되니깐 그 중 10%를 공인중개사가 가져가는 셈이다.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거래를 일으켜 경기 활성화에 진작하는 바가 있다. 정부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인중개사의 표를 의식하고 과격하게 수수료율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 복덕방의 좋은 뜻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변질됐으나 공인중개사들은 적정한 수수료 청구로 이런 이미지가 고착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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