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3 01:10:32
지난 5월 행정직원의 대리수술로 논란이 된 인천의 한 척추관절 전문병원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의가 지난달 국회에서 일단 보류됐다. 이달에 한 번 더 논의해 통과든 부결이든 결정을 낸다고 하지만 표면상 국민 여론이 압도적 찬성이어서 과연 의사들의 저지 노력이 성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이 논쟁은 극단의 찬반만 있고 중간의 타협이 없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비의료인의 대리수술, 수술실 내 생일파티, 수술 중 환자 외모비하, 성추행 등 불법적, 비윤리적 사건사고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와 대중의 불신을 샀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이 수술실로 들어갈 때 살아서 나올지, 죽어서 나올지, 자칫 수술한 게 안한 것만 못할지, 의료진이 성심성의껏 할지, 이런저런 수술실 내 사건사고가 우리에게도 닥칠지 불안과 불만이 컸다. 그래서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거의 하루를 기다려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환자를 보는 가족과 지인들의 심정은 안도감으로 가득하다.
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CCTV 설치에 찬성하는 여론이 90%를 넘는다. 그만큼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는 얘기다. 이를 추진한 여당이나 설문조사를 의뢰한 측의 성향을 감안해 찬성 여론이 과장됐음을 감안하더라도 워낙 찬성 비율이 높아 이를 의심하는 것은 여론 모독에 해당할 것이다.
의사면허를 ‘살인면허’라고도 한다. 치료 행위를 하다가 죽으면 ‘면책’이 된다. 영화 속의 007 스파이가 국가안보를 위해 사람을 죽여도 되는 살인면허를 가졌다면 의사 역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다 불가피한 사유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해도 책임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철학적 근본을 따지면 과연 필요한 수술인지가 의문이다. 별 의미가 없는 수술을 돈벌이를 위해 조장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의사가 귀찮아서 또는 위험해서 행정직원이나 의료기기 대리점 직원에게 수술을 맡겼다면 수술은 숭고한 고난도 의료행위가 아니라 그저 째고 자르고 깁는 반복적인 숙련에 의한 기계적 행위에 불과함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과의사들의 몸에서는 아무리 씻어도 벗겨지지 않는 피비린내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한다. 피를 보는 괴로움을 술로 달래다 간이 망가지기도 하며, 전날 과음으로 숙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하다가 결과가 좋지 않거나 심지어 부작용, 합병증, 사망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식수술 전문가인 한 교수는 “자기의 팔자가 안 좋다. 수술을 앞두고 정말 긴장되고 피가 마른다. 수술 며칠 전에는 술을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절제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척추관절 수술 등 상대적으로 치사할 확률이 낮고 돈벌이가 제법 되는 수술은 대리수술도 훨씬 많고 불필요한 수술이 조장되기도 한다.
척추관절 수술의 경우 의사는 건당 대략 500만원을 번다. 잘 되는 병원이면 하루에 두세 건 정도의 수술을 한다. 그렇게 한 의사가 한 달에 수억~수십억원을 벌고 인건비와 재료비, 임대료 등 운영비를 내고 나면 챙겨가는 돈이 월 최소 5000만원에서 몇 억원 사이다.
의대에 갈 정도면 ‘득점기계’라고 할 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과정에서 인성은 뒷전이기 쉽다. 선의의 마음으로 메스를 잡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을 실력 양성, 인격 도야 면에서 신뢰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
외과의사들은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메스라도 들지만 피부 관련 미용시술이나 시력교정 안과수술 등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리스크에 비해 꽤 많은 이득을 올리는 의사들도 있다. 그래서 의사들의 수익은 진료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개원의냐 월급쟁이냐에 따라 또 다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의사들이 의료사고 위험성과 피를 보는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피부과, 안과, 영상의학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등을 선호한다. 일부 정형외과 의사들은 수술 대신 물리치료나 재활치료로 수익원을 전환하는 상황이다. 이를 생각하면 이유야 어떻든 수술에 나서는 의사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모두 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면 정작 필요할 때 누가 생명을 구하겠는가.
의사들이 CCTV 설치를 반대하는 내면적 이유는 자칫 의료행위의 실수가 그냥 간과할 범위인데도 의료사고로 몰려 의업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보상을 할까봐서다. 수술 영상이 확보되면 의사들은 고의적이지 않은 의료사고나 불법적 소지가 있는 의료행위에 대한 방어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CCTV는 도로, 공공장소이든, 편의점이나 마트, 큰 건물의 내부 등 어느 곳에나 있다. 범죄예방과 치안을 위해서다. 이제 그 CCTV를 최고로 공부를 잘해 인격과 양심마저도 그에 부합할 것으로 기대되는 의사의 수술실에 들이대려 하고 있다.
감시당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지 않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있다고 하지만 속도나 신호를 위반해 교통법규 위반 스티커가 나올지 늘 전전긍긍하는 게 우리다. 내가 의사라면 과연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술하고 싶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세상,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감옥’(Panopticon)을 떠올려보면 감시는 인간을 무력하게 한다.
가장 많은 사람의 공익을 위해 인류가 사소한 손해를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벤담은 18세기말 산업혁명으로 도시에 사람이 들끓으면서 범죄자가 늘어나자 이들을 효율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원형감옥 도입을 주장했다. 즉 도너스 같은 감옥의 가운데에 감시 초소를 둬 360도로 24시간 죄수를 관리하면 더 이상 나쁜 행동과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저절로 교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리주의 철학자가 전체주의적 사고를 갖다니 의아한 일이다.
해킹이나 고의에 의해 영상이 누출되면 큰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국가 원수나 유명 연예인, 의료관광 온 아랍 여성의 수술 영상이 누출된다고 가정하면 안보에 누를 끼치고, 선정성 논란으로 시끄럽고, 외국 환자 유입이 올 스톱될 것이다. 보안 의식과 인프라가 허술한 우리나라에서 언젠가 유출될 가능성은 상당하다.
막상 CCTV가 설치되더라도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의료진은 눈만, 환자는 환부만 빼고 다 가렸는데 대리수술과 관련 신원 확인이 완벽하게 되겠는가. 괜히 절차만 복잡해지고 비용만 낭비될 소지가 있다. 사생활에 대한 자유를 중시하는 중시하는 유럽에서는 CCTV 논의 자체가 없었고, 미국에서는 의사의 파워가 막강해 결국 무산됐다.
여당은 표를 얻기 위해 적잖은 무리수가 있음을 알고도 CCTV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그 판에 야당이 대놓고 반대하기도 부담스럽다. 여당은 원하는 환자만이 촬영이 가능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환자의 이득은 보장했지만 의사들이 인간으로서 감시당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는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자정 노력으로 수술실 내에서 대리수술 등 불미한 일이 없겠다고 했다. 의사들의 양심과 성실성은 원천적으로 초중고 인성교육에서부터 배양돼야 하는데 궁여지책으로 자정한다니 크게 신뢰할 만한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수술이란 치료가 꼭 필요한지, 수술한다면 최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철학적,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지는 뒷전인 채 영상을 찍을까 말까 피상적으로 논의하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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