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2 21:09:52
팜파스 출판 ‘흔들리지 않고 ADHD 아이 키우기’ 표지
석 달 전 마흔여덟살에 얻은 일곱살바기 늦둥이 아들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확진을 받자 마음이 짐짓 무거웠다. 나름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았다 생각했는데 빈틈이 많았다는 게 입증됐기 때문이었다.
앞서 2019년 초여름에도 사설 아동교육심리상담소에 가서 ADHD가 의심된다는 예비 판정을 받았으나 설마 그럴 리 있겠나 싶어 2년 가까이 허송한 게 아들에게 미안하다. 부부가 각기 직장생활 속에서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ADHD로 나와서 약간의 죄의식과 우울감이 나를 휘감는다.
2년 전 아들의 참관수업에 가니 다른 친구들은 수업을 경청하는데- 사실 여자 아이들은 열심이고, 남자들은 건성이었지만 귀 기울이는 척이라도 하는데- 유독 아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누워서 뒹굴며 딴짓하는 거였다. 또 같은 해 학예회에서 다른 친구들은 율동에 맞춰 춤을 추는데 아들은 제 나름의 지극히 단순한 동작을 하며 조화를 깼다. 이를 통해 익히 ADHD임을 간파할 수 있었으나 아니길 바라며 미필적 고의로 방관한 것이었다.
확진 소식은 불가피하게 어린이집 교사들에게도 통보됐고, 원장 선생님은 “한두 살만 해도 총명했는데 언젠가부터 문제가 생겼고 이를 바로잡지 못해 퇴행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고 정작 부모인 우리부부보다 더 걱정했다. 선생님들이나 의사는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치료를 시작하면 얼마든지 학교 들어가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위로해줬다. 자기 자녀가 절대 ADHD가 아니라고 버티고 방치하다가 끝내 사회의 낙오자가 된 여러 사례를 들며 지금이라도 치료하면 된다고 다독여줘 고마운 마음이다.
이후 더 아이들과 놀아주고, 거액을 들여 2층 침대를 사고, 아기방에 에어컨을 넣고, 아이들 정서불안이 ADHD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에 부부싸움을 덜하려 애쓰고는 있다. 고향 선산 계곡에 곧 다가올 성하를 맞아 조그만 물놀이 전용시설도 만드는 중이다.
그동안 ADHD 기사를 쓰느라 보도자료도, 관련 책도 꽤 훑어봤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다보니 아는 게 없었다. 약학 전공자로서 ADHD 치료는 사실 약물치료 비중이 절반 이상이고, 치료제는 순한 각성제로서 부작용은 별로 없고 거의 모든 정신과 약 중에서 위험 대비 편익이 가장 좋으며 치료율이 70%가 넘는 괜찮은 약이라는 정도만이 머릿속에 심어져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들이 약을 먹고 나니 제멋대로 하려는 행동이 줄고 낮에 어린이집 수업과 태권도 수련, 축구놀이에 집중하는 게 관찰됐다. 하지만 저녁에는 약기가 떨어져 부모말을 안 듣고 늦게 자려 버티는 등 예전 모습이 나온다.
다른 정신과질환에 비하면 ADHD는 유전적 요인이 적고 약물과 심리상담치료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일까, 아니면 미안한 마음이 덜 들까? 그래도 연구에 따르면 ADHD로 진단된 아동의 부모나 형제가 ADHD로 진단될 가능성은 2~8배가량 높다고 하니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필자는 수업은 건성이었고 내 나름의 복습을 통해 이나마 학습능력을 터득하게 됐다. 한마디로 욕심은 많았고 산만했으며 힘이나 지력으로 밀리면 열등감에 시달려왔다. 나의 부모님이 자애롭고 화평한 성격도 아니었다.
필자는 아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자부심이 강하길 바랐다. 그래서 방임을 택했고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게 절반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치의 말로는 열등감, 정서불안, 친밀감 부족이 제멋대로 하는 매너 상실, 경청과 성실한 답변의 외면, 병명 그대로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으로 이어져 학교에 들어가면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학생에 민폐를 끼쳐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ADHD는 훈육이 문제였다. 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면 낙오자가 되므로 이를 면하기 위해 적정한 훈육을 통해 천방지축 날뛰는 것을 점진적으로 다잡아가는 게 ADHD 치료의 요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들이 약이나 심리치료로 천편일률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주치의 말을 듣지 않고 일요일엔 약을 거른다. 이것도 내 기질 속에 ADHD가 잠재돼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틀에 박힌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ADHD 교육에 대한 철학적인 반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다시 아들을 위해 이런저런 ADHD 관련 책을 본다. 부모가 균형감과 원칙을 갖고 아이를 대하라는 게 핵심이다. 말하기와 상호반응에서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살피는 에티겟을 가르치는 게 ADHD 치료의 중요한 줄기였다. 이를 통해 아이가 교우관계나 단체생활에서 원만하게 지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더 사랑하고 더 칭찬하며, 아이가 뜻대로 안 될 때 자포자기하거나 화내지 말라는 것도 주제어다.
대략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책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결국 실천이 관건이다.
그러나 내가 왜 아들을 소아정신과에 보내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솔직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에티켓이 부족해 교우관계가 나쁜 것보다 학업성적이 나빠 좋은 학교나 일자리를 잡지 못할까봐 걱정되는 게 정신과에 보낸 더 큰 이유였다. 좀 튀는 아이로서 공부나 운동도 잘하고 사회생활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면 괜찮다고 여겨왔다. 이건 작은 욕심일까? 과욕일까?
결론적으로 많은 ADHD 환자들이 조기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서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인생이 행복해졌다고 하니 이에 따르는 게 맞다. 필자도 점차 아들의 개선되는 모습을 체감하며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ADHD 교육이 개성 말살, 체제를 향한 순치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심리적 기저에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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