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8 11:24:19
국내 최초의 원격의료, 의약품 배송 전문업체를 표방하는 닥터나우 서비스 홈페이지 초기 화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8일 치질·무좀·질염 등의 치료제를 온라인으로 해외 구매대행 해주겠다고 광고한 사이트 236곳을 ‘약사법’ 위반으로 적발해 접속차단 조치를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식약처는 4월 20일부터 5월 26일까지 25개 오픈마켓 등을 점검했으며 이 중 13개에서 치질약 174건, 무좀약 54건, 질염 치료제 8건 등 불법 의약품 판매 광고를 적발했다.
적발된 제품들은 해외직구와 구매대행을 통해 판매되는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의약품으로 당연히 ‘약사법’에 따른 성분·주의사항 등 표시사항이 표시되지 않았다.
이미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염진통제, 영양제 등을 벌크로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게 대세가 됐다. 먹다 남은 피임약을 당근마켓 같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리는 일도 허다하다.
소염진통제나 영양제 등은 불법이긴 하지만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으나 치질, 무좀, 질염까지 인터넷서 구매한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면이 더 강하다. 그러나 대면접촉을 워낙 꺼려하고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도 거부하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심리 상태를 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더욱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인터넷 등 사이버 환경을 신뢰하는 신세대로서는 같은 값이면 더 싸고 약국이나 병원에 들르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구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약사로서 권익을 지키려는 대한약사회 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에 불법 의약품 온라인 판매 행위를 근절해달라고 호소하지만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벽하게 점검, 차단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약사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일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와 의약품 배달과 관련,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선호로 일명 ‘배달약국’이 보편화되면 약국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생각해 전전긍긍하는 마음이다.
닥터가이드가 작년 2월 선보이는 의약품 배달서비스(옛 배달약국, 현 닥터나우)는 약사회 반대로 9월 초에 중단됐다가 두 달 뒤 재개됐다. 이후 정체된 서비스는 한두 달 전부터 다시 활성화되는 양상이다.
지역약사회는 닥터가이드에 가입하지도 말고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지도 말라고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있지만 경영이 어렵거나, 다른 약국보다 한푼이라도 더 벌려는 약국은 닥터나우와 함께하는 모양새다.
원격진료와 그의 일부인 배달약국, 의약품 온라인 구매는 모두 한축으로 대면하길 싫어하는 신세대의 욕구와 맞물려 언젠가는 허용되고 둑이 무너져 의사나 약사 같은 면허 직업인들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
한국에선 약사법상 모든 의약품의 온라인 판매가 불법이다. 하지만 관세법상으로 의약품의 온라인 해외 직접구매는 허용하고 있다. 의약품은 일반통관 대상으로 해외 온라인약국에서 살 수 있고, 정식 수입신고 절차만 거치면 국내 반입에 문제가 없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는 온라인으로 약을 사는 게 일상화돼 있다. 미국은 드러그스토어에서 파는 약 1만종의 의약품을 온라인에서 그대로 구매할 수 있다. 일본은 2013년 일반의약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살 수 있도록 허용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일본우정그룹 산하 택배업체인 일본 우편이 조제약을 집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은 2019년 처방약의 온라인 배송을 허락했고, 러시아도 같은 해 일반약에 한해 온라인 의약품 판매를 허용했다. 미국도 약국체인인 CVS가 2017년 12월 처방약 배달을 전격 시작했으며, 아마존은 작년 11월부터 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프라임 고객에는 배송비 자체가 무료다.
식약처는 온라인에서 의약품을 판매·광고하는 행위는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불법 행위로 의약품을 온라인을 통해 절대 구매·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약사의 권능이 점차 위태로운 상황에서 식약처나 보건복지부 등은 약사로서는 든든한 아군이다.
보건당국은 해외 구매대행 등으로 구매한 제품은 제조·품질관리 기준에 따른 적합 제조 여부와 안전성·효과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유통과정 중 변질·오염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해외 구매대행 등으로 구매한 제품 복용 후 부작용 발생 시 약화사고에 따른 피해구제 대상이 아닌 만큼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국민 정서는 온라인 의약품 유통을 원하고 있다. 대면접촉 기피와 강한 온라인 신뢰도를 바탕으로 신속·편의·효율을 중시하는 젊은층은 약국을 통하지 않고서도 일반약을 온라인에서 살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게다가 경기를 진작시키고 싶고, 대기업이나 신흥 벤처를 통해 세수 확보나 고용 창출이 원활해지도록 바라는 기획재정부 등 정부내 경제부처들은 보건복지부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원격진료, 의약품배달 등을 전면 허용하고 싶어한다.
면허제도의 근간을 생각해본다. 면허증(免許證, License)은 국가에서 특수 행위를 자격을 갖춘 사람에 한해 허가하는 제도다. 어원적으로는 보면 죄를 면하도록 허용해준다거나, 금지된 것을 할 수 있도록 봐준다는 뜻이다.
면허증은 일본식 용어로 그냥 허가증, 등록증, 자격증이라고 하면 된다. 다만 자격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격증이 있으면 더 인정해준다는 뜻으로, 면허증은 오로지 면허 소유자만이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통상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의사, 약사, 한의사는 면허지만 변호사는 자격증이다. 운전은 면허증이 필요하지만 요리사는 자격증이다.
보건당국이 의약품 안전을 위해 약사, 약국만이 의약품을 판매하라는 것은 형식 논리다. 일반약의 경우 이미 허가가 나올 당시부터 상당한 안전성이 허용돼 있다. 개인적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도 다급하면 먹지만 전혀 탈이 난 적이 없고 약효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약사나 약국이 필요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의약품을 안전하게 유통되도록 관리하면서 사용법을 가이드해주기 위해 약국이 존재해야 한다. 안전하다고 모든 이에게 의약품에 접근할 기회를 주면 문제가 생길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군가는 약을 취급해야 하고, 기왕이면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맡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게 면허제도의 근간이다.
면허제도가 국민의 행복에 지장을 준다면 면허범위를 줄여야 할 것이고, 규제를 풀어 불거진 문제가 원상회복이 곤란할 것으로 본다면 지금의 규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맞다. 이 나라에 약국과 약사는 이미 과포화 상태다. 그래서 별로 국민이 불편할 일이 없다. 사소한 국민의 편의를 위해 면허제도를 무너뜨리고 이런저런 약들을 온라인에서 푼다면 둑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면허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온라인 의약품 유통은 막아야 하고, 일반약과 처방약의 배송은 약국 자율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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