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7 16:48:59
보툴리눔톡신 제조기술 문제로 미국과 한국에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대웅제약(왼쪽)과 메디톡스(오른쪽) 본사
대웅제약은 메디톡스가 미국에서 새롭게 제기한 2건의 소송과 관련 “미국에서 대웅제약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관할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 제기한 것”이라며 “한심하고 무책임하며 어려운 회사 사정에 아직도 미국 변호사에게 돈을 쏟아붓는 게 이제는 안쓰럽다”고 17일 반박했다. 또 “K-바이오의 위상을 끌어내리고 국익을 훼손한다”며 다소 어색한 비판을 가했다.
지난 14일(미국 현지시각) 메디톡스는 대웅이 훔친 보툴리눔톡신 제조기술로 미국 특허를 받았고, 여전히 미용 용도가 아닌 치료용 보툴리눔톡신으로 올리는 수익에 대해서는 메디톡스에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으로 미국 현지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웅제약은 메디톡스가 추가로 제기한 소송은 내용은 행정법원 격에 속하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다시 한번 일반 법원으로 옮겼을 뿐이라며 메디톡스가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웅은 또 메디톡스가 대웅이 메디톡스의 영업기밀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ITC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 연방항소순회법원(CAFA)에 항소한 것을 ITC가 지난 3일 기각시키겠다고 밝힌 데 대해 작년 12월에 내린 최종 결정이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와 관련, 메디톡스가 작년 ITC 결정이 아무런 법적 효력 없이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번에 추가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메디톡스 측의 다급한 결정이 엿보인다고 대웅 측은 분석했다.
그동안 메디톡스의 창업자인 정현호 대표는 사석에서 대웅의 자사 기술 도용과 관련, “국내에서 형사소송을 제기해도 대웅의 벽에 막혀 한 번도 기소된 적이 없다”며 억울해했다. 대웅제약의 윤재승 부회장이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검사 출신이라 국내 법조 환경에서는 도저히 메디톡스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호소였다.
결국 그는 미국행을 택했고 가까스로 작년 12월에 ITC 승소라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ITC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를 도용했다는 영업기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고 주보의 미국 내 21개월 영업중지만을 명령했다. 당초 10년의 영업중지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21개월은 너무나 작은 선물이었다. 이런 성과를 얻기 위해 메디톡스는 무려 300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메디톡스는 다시 항소에 나섰다.
기자는 지난 2월말 칼럼을 통해 마치 대웅제약을 두둔하는 듯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메디톡스 본사 압수수색과 과도한 메디톡스 제품의 허가 취소를 비판한 바 있다. 이런 공도를 잃은 식약처의 행정행위가 누구의 작품인지는 업계가 잘 알고 있다. 대웅제약은 그러나 17일 “메디톡스가 다년간 불법적으로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제조·밀수출한 것에 반성·사과해야 한다”며 분수에 넘는 훈계를 했다.
하지만 메디톡스는 이번 2건의 신규 소송을 통해 과욕을 부린 것으로 보인다. 대웅의 도용 관련 반박 논리를 100% 인정하는 언론인은 많지 않지만 메디톡스의 이번 미국 내 신규 소송 제기는 메디톡스가 ITC 승소를 통해 톡톡한 재미를 본 것을 이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며칠 전 한 중견제약사의 전문경영인 K를 만났다. 그는 양사 간 법적 소송전에 대해 “사업가는 절대 소송을 해선 안된다”며 “실익이 없는 짓에 사력을 낭비하는 것은 오랜 사업 경험을 미뤄볼 때 어리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웅과 메디톡스의 대표들이 모두 엘리트 코스를 밟아와서 결코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타협할 줄 몰라 이런 분쟁이 벌어진 것 같다고 추측했다. 평소 기자가 생각한 것과 일치했다.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학 재학 시절 사법고시에 ‘소년급제’했다. 그는 부유한 대웅제약 창업자의 삼남으로, 사시 준비시절 사슬로 걸상과 자기 몸을 결박한 뒤 열쇠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공부한 뒤 대소변을 보고 싶으면 가정부를 불러 열쇠를 가져와 열고 휴식하기를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1962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수원 유신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했다. KAIST에서 세포생물학 석사학위와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부터 보툴리눔톡신 연구에 매진했다.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초빙연구원,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선문대 응용생물학부 교수 시절 바이오벤처인 메디톡스를 세웠다. 여러 차례 실패를 딛고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보툴리눔 A형 독소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2019년 기준 국내 보툴리눔톡신 시장에서 36.9%를 점유하며 54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맨손으로 시작해 크게 회사를 키워온 정현호 대표는 자신이 서울대를 나왔음에도 고교시절 문과생이 갈 수 있는 최고 학부인 서울대 법대 출신의 윤 부회장에게 밀리는 게 너무도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적어도 국내 법조계에선 정현호 이름 석자가 통하지 않았다.
윤 부회장도 메디톡스에 적절한 보상을 했어야 온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도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소송 전략상 불가피한 것이라 해도 어느 정도 상대의 박탈감을 살펴 타협을 모색했으면 자랑스런 K바이오의 작은 성과에 먹칠을 하고 양사가 국익을 훼손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K 전문경영인은 “문과 최고봉과 이과 최고봉이 싸우니 가히 용호상박”이라고 했다. 사업은 광기가 있어야 한다. 거칠게 말하면 ‘똘기’다. 그러나 그 광기가 잘못 쓰이면 서로를 죽이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