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의 백신 접종률(첫 백신 접종 기준)이 50%를 넘어가면서 결국엔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실을 확인해주는 증명서인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이 국내외 여행자를 위한 필수 증명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항공기나 선박 탑승을 위해서, 호텔·리조트·공공행사(운동경기·학교수업) 등에 참여하려면 백신 여권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백신 여권은 단순히 백신을 맞았다는 사실 여부를 증명하기도 하지만 면역력을 가졌다, 또는 병에 걸렸다가 회복됐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는 프랑스는 물론 독일, 영국 정부도 백신 여권은 차별을 초래하고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참여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백악관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백신 인증서는 안 만든다”면서도 “민간이 추진한다면 허용하겠다”며 사실상 여권 사용을 허락했다.
백신 여권은 차별과 불평등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현재 승인된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불신해, 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도 다수다. 이들이 백신 여권을 갖지 못한다면 ‘끼고 싶은 데 끼치 못해’ 당하는 불이익과 소외감이 클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려는 대중들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물론 ‘백신 접종 의무화’에도 순응하면서 이에 반기를 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백신마다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어느 백신은 여권을 발급해주고, 다른 백신은 못 해주고 그럴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자국산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는 입국 시 절차를 간소화해주고 2주간의 격리도 면제해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중국 시노백이 만든 백신은 인도네시아, 브라질, 터키, 칠레를 포함한 20개국에서 긴급사용승인으로 허가됐지만 아직도 세계 표준에 맞지 않는 임상 절차와 임상 데이터의 불투명성으로 40~50% 정도의 유효성만을 겨우 인정받고 있다.
더욱이 지금 승인된 백신이 전염 위험을 100% 제거한다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또 바이러스 변종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고 면역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도 불분명하다. 추가 접종(부스터샷)이 이뤄져야 면역효과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가운데 이런 경우에는 백신 여권에 뭐라 표시할지도 궁금하다. 백신 여권 가졌다고 마스크 착용 등 개인위생을 소홀히 했다가 오히려 방역에 구멍이 뚫릴 가능성도 있다. 일정 기간 격리 없이 해외여행을 허용할지도 관심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여권이 자리잡게 된다면 여권을 갖는 백성이 소수인 나라와 다수인 나라의 경제·외교적 분리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한 정부를 원망하고 질타하고 있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지난 24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화이자로부터 추가로 4000만회분을 추가 구매키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총 6600만회분의 화이자 백신이 확보됐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3분기까지 1억회분(5000만명분 초과)이 확보돼 예상했던 올 11월 집단면역 형성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부작용으로 불신이 만만찮고 소량이나마 꾸준히 국내에 공급해온 화이자가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게 보건복지부 결정의 바탕이 됐다. 나머지 모더나, 노바백스, 얀센 등의 백신은 각각 다른 외국에 선공급, 허가 지연, 부작용 노출 등으로 국내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웃돈이라도 백신을 확보하라는 국민의 지상명령과 청와대의 독촉에 보건복지부가 물밑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화이자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이 붙고, 화이자가 돈도 더 챙겼을 것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제약사의 갑질’을 운운하며 토를 달 처지가 못 된다.
백신 여권 발행과 관련, 정부는 ‘블록체인’ 방식으로 진행키로 했다. 질병관리청, 복지부, 행정안전부, 보건의료정보원 등이 관련 정보를 분산해서 저장해 기밀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주민등록번호 없이 ‘개인 키’만으로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나온 4월초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백신 접종도 부진하고 11월이 돼도 집단면역이 형성될까 말까하는데 무슨 소리냐”며 생뚱맞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화이자 백신 추가 도입으로 적어도 이젠 “필요하긴 하겠네”라는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할 것이다.
한편 블록체인 업체는 가상화폐와 관련 깊다. 가상화폐는 기성 화폐에 반감을 가진 젊은 진보적 성향이 새로운 가치 체계를 형성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재테크 수단이다. 많은 고위험, 투기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집권세력은 지지층의 이탈을 막기 위해 방조해왔다. 집권세력이 블록체인 업계와 끈끈하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종이 증명서가 뭐가 미흡하기에 굳이 블록체인 증명서를 만들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결론은 백신 수급이 문제였다. 백신이 충분히 조기에 공급됐더라면 우리 국민의 정서상 백신 여권에 대한 인식도 좋았을 텐데, 매우 늦은 시기에 백신이 공급될 것이라고 하니(이마저도 확실하지 않지만) 여권이 차별의 상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 미국, 영국은 초기 코로나19 대응이 엉망이어서 환자가 급증했고 이를 획기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백신 개발 또는 수습에 공을 들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의 방역 협조로 환자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백신 조기 확보에 느슨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조기 집단면역 형성과 코로나19 이전의 태평연월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