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권, 연예계, 체육계 등에서 공인인데도 형이라 부르길, 형으로 불리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원희룡 제주도 지사는 18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형에 대한 우정을 담아 요청하려 한다”며 “극단의 정치를 이끄는 이른바 ‘대깨문’들에게 왜 아무 소리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사실 후보자가 한나라당 박차고 떠날 때의 그 기준이면, 지금은 ‘대깨문’ 행태를 비판하고 민주당 박차고 떠날 때”라고 했다.
원 지사가 김 후보자를 ‘형’이라 거명한 것은 같은 대학교를 나왔고 20여 년 전 자신에게 정치 입문을 권유한 인연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표현이기기도 하겠지만 쓴소리를 하기에 앞서 그에 거슬러 나올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기 위해 참호 속에 자신을 엄폐한다는 느낌도 든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형이라 부를 거면 축하나 덕담을 할 것이지 고작 한다는 말이 조롱에 가까운 비아냥”이라며 “그 형을 자신의 언론 플레이 먹잇감으로 써버리는 저 얄팍한 수준의 인간성을 모를 줄 아는가”라고 했다.
연예계, 체육계도 사석이면 괜찮지만 방송에 나와서 형이란 말을 남발한다. 과연 호형호제할 만큼 친한 것인지, 동고동락할 만큼 어려운 우애가 단단한 것인지 시청자로서는 알 수 없다.
형이라 불리기 시작하면 책임질 게 많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밥값, 술값, 찻값 등을 내줘야 하고 마음 씀씀이를 크게 해야 한다. 쭉 잘 해줬더가도 한번 실수하거나 아우를 맘 상하게 하면 ‘형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원망과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엔씨소프트 대표이자 NC 다이노스 구단주가 ‘택진이형’이라고 불리는 게 부러웠는지 돌연 지난 1월 말 돌연 SK 와이번스를 인수했다. SSG 랜더스의 구단주가 된 정 회장은 “이제 나를 ‘용진이형’이라고 불러도 좋다”며 호탕하게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3월 23일 정 부회장의 이름에서 딴 ‘용(Yong)’과 천재라는 의미의 ‘지니어스(Genius)’를 합친 것으로 추정되는 ‘용지니어스(YONGENIUS)’ 상표를 출원했다. 앞으로 이런저런 마케팅에 이 상표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형으로 불리면서 주도하고 감당하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형이라 부르면서 형의 그늘에서 몸과 맘이 편하기를 희구한다. 그 속에서 우애와 의리가 있으려면 좋으련만 일방의 ‘원사이드 러브’라면 갈등과 비극의 씨앗이 아닐 수 없다.
삼강오륜의 삼강에도 군신, 부자, 부부 순으로 지켜야 할 근본을 말했을 뿐 형제는 빠져 있다. 오륜에는 부자, 군신, 부부, 장유(사회), 붕우(친구) 등의 덕목을 이야기했지만 구체적으로 형제애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오륜에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빼고 형우제공(兄友弟恭)을 넣어서 형제애를 강조해줘야 할까.
이를 현대적으로 부자, 부부, 형제, 붕우 순으로 중요하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형제(가족 관계)와 붕우(사회적인 형제)의 깊이는 사귀기 나름이고 온도차도 크다. 붕우가 가족인 형제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중국에는 ‘어떤 친구도 형제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고, 일본에는 ‘형제는 남이 되는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는 ‘형만한 아우는 없다’는 말이 각인돼 있다. 삼국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덕업일치(悳德一致) 덕분인지 NC 다이노스는 지난해 코리언시리즈에서 우승했다. SSG 랜더스도 같은 기운을 받길 바란다. 덕업일치란 취미와 적성이 사업으로 이어져 번창한다는 의미다. 어떤 일이나 취미에 대한 마니아를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御宅, 한국식 발음 오덕후)와 업(業)이 합쳐진 신조어다. 두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형이라 불리면서 사업에 선용하는 것은 어쩌면 속이 보이면서도 마케팅 요소로서 필요하기도 하고 많은 고객에게 행복감을 준다.
그러나 정치권 등에서 함부로 ‘형’이라 부르는 것은 정치의 공적 책임과 자주의식을 스스로 완화 또는 붕괴하면서 숨는 데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 재벌가에서 ‘형제의 난’이 일어났을 때 언제 ‘형님’ ‘동생’ 운운하는 것을 봤는가. 현실이나 드라마에서도 재벌 가족들은 공식 석상에서 ‘회장’ ‘부회장’ ‘사장’ 등으로 불릴 뿐이다.
필자의 작은 경험으로는 생전 처음 본 사람을 만난 지 몇 십분도 안 돼 ‘형’이라 부르는 사람치고 인간적인 의리와 정이 두터운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공술이나 용돈을 얻어먹고 정작 험한 일에는 뒤로 숨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였다. 자존감이 없거나 염치는 실종되고 실리만을 추구하는 부류가 상당수였다. 이런 사람에게 잘 해줬다간 돈을 빌려줬다간 후회막급한 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거꾸로 만난 지 얼마 안 돼 ‘자네가 나를 형으로 불러줬으면 하길 바라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100% 믿을 것은 못 된다.
형이라 부르려면, 형으로 불리려면 그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제공(悌恭, 삼가고 받들어 모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