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선 일부 국가 AZ 접종 중단 … 보궐선거 패배에 뜬금없이 국산백신 개발현황 브리핑, 3상도 안 끝났는데 국내 생산 ‘김칫국’
급조된 백신개발의 후유증일까. 유독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백신 중 유전자재조합 바이러스 벡터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AZ)와 존슨앤드존슨(얀센)의 백신이 부작용 논란으로 접종 계속 여부 또는 수출국 내 신규 허가 여부를 놓고 난항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 항원 생산을 유도하는 mRNA 전달 방식의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에 대한 부작용은 별로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지난 3월 중순부터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인 ‘백스제브리아’(Vaxzevria)의 부작용을 면밀하게 조사해왔다. EMA는 초기에는 백신의 이득이 부작용으로 인한 손실을 상회한다고 했지만 지난주부터 기류가 바뀌고 있다. 부작용 사례가 한달 남짓 축적되자 이미 유럽 몇몇 나라는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을 중단했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 고령층(60세 이상)만 접종하도록 조정했다.
지난 7일 EMA는 AZ 백신이 혈전 생성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혈소판 수치가 낮은 비정상적인 혈전은 매우 드문 부작용으로 (의약품 설명서에) 등록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EMA 산하 의약품감시위험평가위원회(Pharmacovigilance Risk Assessment Committee, PRAC)는 지난 4월 4일 기준 유럽과 영국에서 약 3400만명이 AZ 백신을 맞은 가운데 뇌정맥동혈전증(Cerebral venous sinus thrombosis, CVST) 169건과 비장정맥혈전증 53건과 복부혈전 수십 건을 검토했다. 이 중 최소 18건이 치명적이었다.
반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인 ‘코미나티주’(Comirnaty)는 5400만명의 백신 접종자 중 단지 35건의 CVST가 확인됐다. 화이자의 라이벌인 모더나의 mRNA 코로나19 백신은 400만도스의 백신 접종 중 5건의 CVST가 확인됐다.
영국으로만 국한하면 영국 의약품 및 보건의료제품 규제청(Medicines and Healthcare products Regulatory Agency, MHRA)은 지난달 31일 기준 접종자 2000만명 중 79건의 희귀한 혈전반응 사례를 발견했으며 1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중 3명은 18세 이상, 30세 미만이었고 나머지는 79세 미만이다. 이 백신의 부작용은 주로 20대, 30대, 40대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망자의 거의 3분의 2가 여성으로 모두 첫 번째 투여 이후에 발생했다.
지난 3월 11일 유럽에서 조건부 승인된 존슨앤드존슨의 단회 투여 백신은 450만명 중 4건의 혈전 사례가 발생했다. AZ 백신과 마찬가지로 혈소판 수치가 낮은 상황에서 혈전이 생성된 게 공통점이다. 4건 중 1건은 임상시험에서 나타났고, 나머지 3건은 미국에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는 동안 발생했다. 1건은 중증도가 치명적이었다. 유럽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 EU 회원국 중 얀센 백신을 맞지 않았고 앞으로 몇 주 후에 접종이 시작될 전망이어서 AZ 백신과 같은 부작용 논란에 휩싸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이탈리아는 60세 이상에게만 AZ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했다. 영국도 30세 미만의 AZ백신 접종을 중단하고 화이자나 모더나의 백신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9일에는 AZ 백신 접종자 중 혈관에서 체액이 빠져나가는 ‘모세혈관누수증후군’(Systemic capillary leak syndrome, SCLS)이 5건 발생하면서 조직 부종과 혈압 강하에 수반됨을 확인했다. SCLS는 고열, 오한, 발진 등은 없으나 쇠약감, 메스꺼움, 머리가 띵하고 어지럽고 실신할 것 같은 느낌, 복통, 두통, 사지부종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심장과 폐 주변에 체액이 축적되면 이들 조직에 부종이 생기고, 혈장 알부민과 혈색소가 각 조직에서 빠져나가면 조직세포가 시들시들해지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정부는 혈전 발생 논란으로 한동안 보류했던 AZ 백신 접종을 12일 재개핬다. 다만 영국처럼 30세 미만은 제외키로 했다. 유럽에서 문제가 된 희귀 혈전증인 CVST와 내장정맥혈전증 등이 국내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3건의 혈전 발생 사례 중 2건의은 백신과의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았고, 나머지 1건은 인과성은 인정되나 혈소판 감소가 동반되지 않아 유럽의 부작용 유형과 다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민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도 넉넉하지 않지만 30세 미만에게 맞출 화이자 등 대체 백신도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노바백스 백신의 국내 생산이 시작되고 상반기 백신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도 확보했다”며 “6월부터 완제품이 출시되고, 3분기까지 2000만도스가 우리 국민들을 위해 공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새로울 것도 없는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현황을 브리핑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유바이오로직스, 셀리드,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등 5개 기업이 임상에 진입했으며 올해 하반기부터 임상 3상 착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GBP510는 표면 항원 단백질이 정20면체의 나노구조를 형성하는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보다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많은 바이러스가 정20면체(Icosahedron) 캡시드(capsid 게놈을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껍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SK는 지난달 11일 국제민간기구인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으로부터 1420만달러를 추가로 지원받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까지 예방할 백신을 추가로 개발키로 했다.
제넥신은 지난 2월 26일 코로나19 백신후보물질 ‘GX-19N’의 임상 2a상 첫 투여를 마쳤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이 2상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넥신은 지난 10월 GX-19로 1상을 마무리했으나 이 즈음에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변이 코로나19가 출현하자 변종에 대응 가능한 GX-19N으로 업그레이드해 1상부터 다시 시작했다.
제넥신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입할 때 활용하는 스파이크단백질의 항원을 체내에 생성하는 DNA 방식의 백신이다. 스파이크 항원과 높은 유전자 서열 보존성을 가진 뉴클레오 캡시드 항원을 함께 탑재한 차세대 백신으로 변이체에 대한 방어 능력을 향상시킨 게 장점이다. 제넥신은 백신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치료제인 GX-17의 임상시험을 인도에서 2상, 한국에서 1b상, 미국에서 1상을 각각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의료계 일각에서는 3상 임상도 끝나지 않았고 국내에 허가 신청도 접수되지 않은 노바백스 백신을 놓고 정부가 성급하게 접종 계획을 세운 데 대해 “안전성 검증도 안 했는데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 효과는 95.6%, 영국 변이에 대해서는 85.6%의 효과를 보였다. 남아공 변이에서는 55%로 효과가 줄었다. 다만 청와대의 움직임은 지난 4월 7일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접종 부진’ 에 따른 ‘집단면역 형성 지연’ ‘코로나19 방역 실패’ 책임론이 제기되자 ‘속도전’으로 이를 제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노바백스는 유럽 EMA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모두 긴급사용승인 신청을 했다. 유럽은 4~5월, 미국은 7월께 긴급사용승인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 대통령 발언대로 한국에서 6월 시판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유럽 EMA 승인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노바백스는 시장이 크고 백신의 공신력을 높여 줄 유럽과 미국에서의 허가에 집중할 텐데 언제 우리나라에 승인 신청을 낼지 불투명하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단지 위탁생산만 하는 AZ백신과 달리 노바백스 백신은 기술이전받아 독자적으로 생산, 판매할 권한까지 얻었다. 정부의 조급한 백신 공급 독려는 노바백스 백신의 성공적인 유럽 허가와 국내 승인 선순환으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국민의 만족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