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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10대오름] ⑩물영아리오름 … 람사르습지 중잣성 간직한 생태의 보고
입력일 2020-05-16 14:40:45
새우란 가는 길마다 지천, 2월초엔 제주세복수초 방긋 … 넓은 초지, 편안한 나무계단

사철 내리는 빗물을 고이 받아 모아둔 물영아리오름 분화구 습지에는 세모고랭이, 물고추나물, 보풀, 마름, 고마리 등의 습지식물과 누운기장대풀, 넓은잎미꾸리낚시, 가막사리, 올챙이고랭이, 바늘골, 꼴하늘지기 등 이름도 낯선 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또 수서곤충 18종을 포함해 총 47종의 곤충, 참개구리·도마뱀·유혈목이 등과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인 물장군과 맹꽁이도 서식한다.

제주는 바람과 돌은 많아도 물은 귀한 곳이다. 제주에 내리는 빗물은 대부분 돌 틈으로 스며들어 땅 속을 흐르다 바닷가에서 용천수로 솟기 때문에 중산간 지역에서는 샘은커녕 고인 빗물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개천 역시 큰 비가 내릴 때에만 잠시 흐를 뿐 늘 말라 있다. 물이 귀했던 과거 중산간지역의 샘과 연못은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이어서 애지중지 귀하게 관리됐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 해발 높이 128m의 물영아리오름은 정상 분화구에 물이 고이는 몇 안되는 제주 오름 중 하나로 습지생물이 생명을 잇고 있는 터전이다. 2007년 국내 다섯번째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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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오름 368개 중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는 오름은 10여 곳에 불과한데 물영아리오름이 그 중의 하나다.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의 분화구는 빗물이 빠져나가지 않아 습지를 이루며 귀한 습지 동식물과 곤충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생태학적 가치가 인정돼 2007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됐다. 우리나라 다섯 번째 지정 습지다.

해발 400m의 제주 동남부 중산간 지역 위치한 물영아리오름은 그 높이가 128m이고 아래쪽 둘레는 4km가 넘는다. 오름 주변에 넓은 초지가 자리해 오래 전부터 소와 말의 방목장으로 이용됐다. 가축이 초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오래 전에 쌓아올린 돌담인 잣성이 여전히 보존돼 있다.

물영아리오름은 거문오름의 세계자연유산센터나 동백동산의 습지센터만큼은 아니지만 방문자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이 충분하고 아담한 공원에 방문자 안내센터도 있다. 공원 조형물을 통해 물영아리오름이 품고 있는 귀한 생물에 관한 설명을 읽고 탐방로에 들어서면 눈앞에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그 끝에 물영아리오름의 우거진 숲이 보인다.

입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오른쪽의 드넓은 초원을 살피며 걷다가 갈래 길을 만나 다시 왼쪽의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분화구로 바로 올라가려면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된다. 물영아리오름 둘레길은 뒤쪽에서 분화구 능선으로 올라 습지까지 왕복하는 거리를 포함해도 6km가 채 되지 않지만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풍부한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올 2월초 물영아리오름 왼쪽 둘레길에서 만난 제주 세복수초(왼쪽)와 이 곳 탐방로에 지천인 5월의 새우란꽃. 새우란은 보통 짙은 갈색과 흰색이 섞인 꽃이 4월말부터 피는데 이 곳은 황금색이 아름다운 금새우란을 자랑한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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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초 이곳에 왔을 때 둘레길로 접어들어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진한 노란 꽃들을 만났다. 지천으로 자란 달래 무더기 사이에서 높이 자라 오르지도 않고 겨우 마른 풀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꽃들을 보려 발걸음을 옮기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진한 달래향이 풍겼다. 눈에만 담기 아까워 사진을 찍으며 봄이 오기 전 눈 위에 누운 듯 피는 복수초라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던 이들이 다가와 제주 세복수초라고 설명을 한다.

세복수초꽃을 뒤로하고 접어든 오솔길은 평탄하고 일부 구간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길 양쪽의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이 길은 길고 긴 나무 터널이 될 것이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일정한 거리마다 세워져 있는 위치 안내 표지판을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으며 걸었다. 마른 고사리 밭을 지나 곰솔 숲을 빠져나가니 드넓은 초지가 나타나고 그 끝 먼 곳에 또 다른 오름이 보인다. 여문영아리오름이다. 여기서부터는 물영아리오름의 뒤쪽 산기슭을 걷는다.

물영아리오름 뒤편 둘레길에서 분화구 안 습지까지는 왕복 1km가 조금 넘는다. 전 구간이 나무데크길이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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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린 비자나무가 길을 따라 자라고 있다. 곳곳에 새우란이 보인다. 2월초 새우란 잎은 마른 풀 위에 누워 있었다. 4월말 지난해의 잎 사이로 연한 초록의 잎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곧 꽃대가 올라온다. 4월말부터 꽃이 피는 새우란은 활짝 피면 마치 여러 어린 소녀들이 폭 넓은 치마를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는 듯 바람에 꽃잎을 흔든다. 통상 새우란 꽃잎은 짙은 갈색과 희색이 섞여 있지만 이곳 물영아리오름에 자생하는 새우란 중에는 꽃이 온통 노란색 일색인 금새우란이 포함되어 있다.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많은 새우란 포기가 오솔길 옆 얕은 숲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물영아리오름 둘레길은 구간별로 물보라길, 푸른목장초원길, 오솔길 등의 이름이 붙어 있으며 걸으며 고사리, 새우란 등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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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영아리오름 뒤에서 분화구로 오르는 계단 길은 앞쪽의 길보다는 짧고 가파르지도 않아 쉽게 오를 수 있다. 이 계단 양쪽에도 새우란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길 가까운 곳에 심어 두고 보살피는 듯하다. 분화구 능선에서 습지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은 모두 나무 계단이 설치돼 방문자가 많아도 분화구 능선이 훼손되지는 않을 듯했다. 문득 방문자 수가 급증하면서 야자매트를 깔아둔 산책로마저 패이기 시작했던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의 능선이 떠올랐다.

물영아리오름의 능선에서는 숲이 울창해 능선 밖의 풍경은 볼 수 없다. 겨울엔 나뭇가지에 비치는 햇빛이 아름답고 여름엔 그늘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다. 오름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걸어 나가 전망대에서 멀리 겹겹이 겹쳐진 오름들을 바라보며 능선에서 이것저것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물영아리오름 입구까지 멀지 않은 길은 돌담을 따라 걷는다. 방목 중인 가축들이 목장을 벗어나지 않도록 오래 전 쌓은 중잣성이다.

물영아리오름 오른쪽의 중잣성은 목장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다. 상잣성은 제주 중산간지대에 방목 중인 가축이 한라산 삼림지대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위쪽에 쌓은 돌담이다. 하잣성은 반대로 가축이 밭으로 내려가 농작물을 망치지 못하도록 중산간지대 아래쪽에 쌓았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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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잣성은 말이 한라산의 삼림지대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중산간 지대 위쪽에 쌓은 것이다. 아래쪽엔 하잣성을 쌓아 가축이 농경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가운데 중잣성은 목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이다. 물영아리오름의 중잣성은 아직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고 있다. 바위 틈을 비집고 자란 나무가 제법 실하고 바위마다 붙은 이끼가 오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근식 여행작가 ohdant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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