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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10대오름] ⑦거문오름, 거대한 용암이 흘러내려 동굴 만들고 석회암지대까지 하이브리드
입력일 2020-03-15 19:20:52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 아주 특이한 식생과 지형, 보존 위해 하루 450명만 입장 가능

거문오름에 들어서면 나무에 가려 먼 풍경을 거의 볼 수 없다. 제1봉 전망대에 비로소 바라보는 오름 밖 풍경엔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백약이오름 등 제주 동부의 아름다운 자연이 생생하게 들어온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은 거대한 말발굽형 오름이다. 용암이 분출되며 가운데 둥근 형태의 분화구를 만들지 않고 한쪽이 터지면서 흘러나간 형태의 오름을 말발굽형이라 하는데, 거문오름은 오름이면서도 제주도의 특징적인 식생과 용암지형 등을 거의 모두 보여주는 귀한 오름이다.

최소한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하고 당일 예약은 받지 않는다. 예약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예약자 신분을 확인하고 입장권을 구매하면 입장이 가능하나 반드시 해당 시간에 배정된 해설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오전 9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오후 1시까지 한 회당 최대 50명씩 450명만 입장한다. 매주 화요일엔 이마저도 쉰다.

한겨울 눈이 와도 등산용 지팡이와 아이젠 착용은 금지되어 있으며, 비 오는 날 우산 사용 역시 금지되므로 비옷을 입어야 한다. 물 이외에 어떤 종류의 식음료도 지참할 수 없으므로 출발하기 전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거문오름 한 번 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래도 방문자는 줄지 않는다. 꽃피는 봄에는 이곳 방문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제주 여행 일정을 확정한 다음 이곳을 방문하려 예약하면 이미 늦다. 일찌감치 마감돼 있기 일쑤다.

거문오름 분화구 내 곶자왈은 바위 무더기 위에 듬성듬성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비교적 초기 단계가 많다. 떨어진 낙엽을 토양 삼아 덩굴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이미 자리잡은 나무들과 뒤엉켜 눈앞에서도 분간하기 어려운 숲이 된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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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은 어떻게 해서라도 한 번은 가서 걸으며 보고 들을 가치가 있다. 2005년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됐다. 3년 후엔 거문오름·만장굴·용천동굴이 포함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성산일출봉,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방문 예약부터 까다로운 이유는 국내 유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해설사들은 말한다. 가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 없이 걷다가 와야 할 곳이다.

거문오름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다. 그 하나는 오름의 흙이 검은 데다 숲이 우거져서 오름이 검게 보인다 하여 ‘검은오름’으로 불리다가 한자를 넣으면서 거문오름이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거문오름은 한자로 거문악(巨文岳)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제주 고유어로 불리던 많은 오름들이 어느 때부터인지 한자 이름을 얻으면서 그 이름의 유래를 밝힐 수 없게 된 경우들이 있는데 거문오름은 예외인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거문오름을 검은오름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신(神)이라는 뜻을 지닌 ‘검’이라는 단어에서 ‘거문’이 유래했다고 하면서, 신령스런 산이라는 의미로 거문오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과거 인근의 주민들이 거문오름을 ‘거물창’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서 ‘창’은 분화구를 뜻한다고 하니 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센터는 거문오름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게 비행접시처럼 유선형으로 낮게 지었다. 가운데는 도넛 모양으로 비어 있고 오른쪽은 사무용 공간, 왼쪽은 지하층까지 전시 공간으로 쓰인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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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에 처음 간 때는 지난해 10월 초였다. 탐방 시간을 오전 9시로 예약하고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아직 한산했다. 마치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납작하고 날렵한 건물이 보인다. 세계자연유산센터다. 외계 비행선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도넛 모양의 건물이어서 하늘을 한 번 더 보았다.

이날 9시에 탐방객 정원을 거의 다 채워 출발했다. 해설사가 다시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거문오름으로 출발하는데 이제 피어나고 있는 억새꽃이 햇빛에 반짝인다. 그 뒤로 보이는 오름 길에 짙은 삼나무 숲 그늘이 검다.

거문오름 탐방은 1구간을 지나 2구간까지만 해설사가 동행한다. 탐방객들은 사정에 따라 1시간 소요되는 1.8㎞의 1구간만 보고 출구로 나갈 수도 있고, 2시간이 소요되는 총 5.5㎞의 2구간까지 보고 나갈 수도 있다. 3구간은 약 4.5㎞로 해설사 동행 없이 탐방로를 걷는다. 탐방객 대부분은 2구간에서 해설사와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3구간의 탐방로 산책은 그 어느 때보다 호젓한 분위기를 속에서 즐길 수 있다.

11월 중순 두 번째 방문길에 해설사가 거문오름 오르막 입구에서 오름 능선을 향해 나 있는 길에 관해 잠시 설명을 했다. 과거 제주도의 오름은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거나 아니면 소와 말을 방목하는 목초지로 이용되었는데 새로운 풀이 나기 전 풀에 불을 놓아 해충을 없애고 그 재를 거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불을 놓을 때 난 이 길이 불태우는 구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거문오름의 능선은 총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탐방로는 가장 높은 제1봉으로 올라가 오름 전체를 조망하고, 말굽형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 일대를 두루 살피고 반대편 능선의 제9봉에서 해설사 탐방을 마친다. 각 봉우리는 용(龍)으로 표현해 자유 탐방이 시작되는 제3구간에서는 봉우리마다 9룡에서 2룡까지 깃발이 꽂혀 있다.

해발 456m의 거문오름 제1봉 전망대 근처의 숲은 인공조림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성된 활엽수 숲이다. 나무를 감은 각종 덩굴식물은 물론 비탈에도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함께 경쟁하며 자라고 있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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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에 접어들었음에도 제1구간의 능선 탐방로 주변엔 곳곳에 달래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10월까지만 해도 꽃을 달고 있었던 양하는 잎이 모두 스러진 상태였다. 제1구간의 탐방로엔 내내 삼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삼나무가 지배적인 곳엔 다른 식물은 거의 모이지 않으며 새 소리 역시 들리지 않는다. 아마 거문오름의 일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삼나무 숲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과 삼나무의 식생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듯했다. 제1 탐방 구간이 끝나는 분화구에서 보니 10월에 만발했던 억새꽃은 이미 초라하게 지고 있었다.

이곳은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엄청난 양의 용암이 제주도 동쪽 해변으로 빠져나간 곳이다. 이 용암이 흘러내리며 표면이 식어 굳는 동안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굳지 않은 용암이 흘러나갔고 용암의 추가 공급이 멈추면서 각종 동굴이 형성되었다. 선흘수직동굴, 뱅뒤굴,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동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이에 속한다. 이중 만장굴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거문오름 주차장에서 세계자연유산센터로 가는 길에 전시된 한 기암괴석은 용암이 나무를 에워싸자 나무가 타버리고 용암이 식어 굳으면서 나무 자리에 큰 구멍이 형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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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문오름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은 용천동굴이라 한다. 전봇대 세우는 공사를 하던 중 전봇대가 땅속으로 가라앉으며 우연히 발견된 용천동굴은 용암동굴이면서도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되는 종유석 등 각종 탄산염 생성물이 가득해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용암동굴이 만들어진 후 지표면에 조개껍데기 등으로 이루어진 바닷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와 쌓이고 비가 내려 이 모래의 석회 성분이 동굴로 스며들어 마치 석회암 동굴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설사는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이 용천동굴 끝에는 맑고 잔잔한 거대 지하호수가 있고, 동굴 곳곳에서 토기 파편이 발견되어 고고학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이 용천동굴은 개방되지 않고 있으며 연구 목적으로만 출입이 허용된다고 한다. 이 동굴 관련 영상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관람할 수 있다.

거문오름 분화구 지대는 비옥한 토지여서 이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주민들이 경작, 방목, 숯가마 등을 영위했다. 숯가마는 19060~70년대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세월이 흐르면 나무와 풀이 사람이 개입한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울 것이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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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군락지를 지나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거문오름 탐방의 핵심구간이다. 이 지역은 각종 활엽수가 자연스럽게 자라며 새들을 끌어들이고, 제주 곶자왈의 특성을 보이는 바위 지대 위의 숲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화산탄, 동굴, 붕괴협곡 등 화산활동으로 생긴 각종 지형이 눈길을 끌며, 한때 사람이 살며 만든 잣성, 숯가마가 점차 흔적으로 변해가고,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동굴 등이 곳곳에서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단풍나무와 각종 활엽수의 나뭇잎이 물들며 떨어질 준비를 하는 동안 숲은 제법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 그 나무들 아래 햇빛이 간간이 비치는 곳 여기저기에 새우란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10월까지만 해도 성성하게 세우고 있던 잎이 어느새 낙엽 위에 누워 있다. 이젠 내년 봄에 연녹색으로 꽃대를 감싸며 올라올 새잎이 설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오근식 여행작가 ohdant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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