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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의 혼이 숨쉬는 산청 … 남명매·원정매·정당매 3대 古梅를 아시나요
입력일 2020-08-14 18:39:42
예스럽고 아늑한 남사예담촌의 고택과 담장, 부부회화나무의 금슬 … 구형왕릉, 단속사지의 허전함

남사예담촌의 부부회화나무

경상남도 산청군은 함양에서 뻗쳐나온 지리산 줄기가 산청 서부를 남북으로 가른다. 황매산·부암산은 합천과, 소룡산은 거창과 경계를 이룬다. 남부의 우방산과 주산은 하동과 맞닿아 있다. 산청 한 가운데는 경호강이 굽이쳐 좁다란 평원의 젓줄이 된다.

경호강은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리(약 32km)의 물길이다. 상류와 중류의 마디가 되는 곳에 산청읍이, 중류와 하류의 경계쯤에 단성면이 있다. 이 둘은 산청에서 가장 큰 읍면이자 생활중심이다. 산청읍 서쪽에 왕산과 팔봉산이, 정중앙 쯤 되는 곳에 웅석봉(군립공원)이 경호강 서쪽에, 웅석봉의 대칭점이라 할 경호강 동쪽에 둔철산·대성산이 자리한다.

산이 맑다는 산청은 이처럼 산 투성이다. 전체 면적 794.6㎢ 중 임야가 623㎢이다. 금서면 특리의 봉화산 활공장과 신안면 외송리 둔철산 자락의 정취암에서 산청의 전경을 각각 서쪽과 동쪽의 포인트에서 볼 수 있다.

동의보감촌 입구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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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에서 산청군 생초면으로 넘어오면서 가장 먼저 들를 만한 곳은 동의보감촌·산청한의학박물관과 구형왕릉·덕양전이다. 동의보감촌은 금서면 특리(特里) 1300번지 필봉산 및 왕산(王山) 자락에 118만1000㎡(35만7252평) 규모로 조성해 2007년 5월 4일 개장했다. 수백억도 아닌 수천억원이 투입됐다.

2013년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이 곳 한의학박물관과 엑스포주제관을 중심으로 열려 216만명이 방문, 80억원의 수익을 창출한 바 있으며 10년 후인 2023년에 2차 엑스포가 열린다. 이 곳에는 약초관, 약초테마공원, 한방기체험장, 한방자연휴양림, 한방가족호텔, 본디올한의원, 동의폭포, 한방 약선과 관련된 찻집과 음식점이 조성돼 한방의 향기를 울려준다. 야영장, 한방 스테이, 한방 스파, 생태 체험도 가능하다.

이름 그대로 특리와 왕산에 조성됐으니 기가 센 곳으로 쳐준다. 그래서 거북이를 닮은 귀감석(龜鑑石)과 봉황이 새겨진 석경(石鏡), 복석정(福石鼎)을 만들어놨다. 11t에 달하는 귀감석은 기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만지고 안아보려 애를 쓴다. 복석정은 화를 복으로 바꿔준다는 솥단지 모양의 바위다. 진주시와 함안군 사이의 물에 잠겨진 바위를 2013년 엑스포 개최에 맞춰 이 곳에 옮겨놨다고 한다. 한방 기체험장에 3개의 기(氣) 바위를 모아놨다.

동의보감촌 인근에는 국새전각전이 있다. 현재 정부가 사용 중인 제4대 국새를 새긴 곳이 여기다. 풍수지리적으로 왕산과 팔봉산이 왕이 문무백관을 거느리는 듯한 기가 강한 터인데다, 국새를 만드는 거푸집의 원료인 고령토의 25%가 산청에서 나오고 그 주된 채굴지가 왕산 일대이기 때문이다. 건물 자체로도 한옥 지붕과 처마의 휘어진 각도, 그 위에 올려진 청기와의 색깔이 아름답다.

이 곳에 동의보감촌이 조성된 것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柳義泰)가 경남 산음(지금의 산청군 생초면)에서 한의학을 전수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류의태는 1990년 소설가 이은성(1988년 작고, 사후 발간)이 발간한 ‘소설 동의보감’과 같은 해 방영한 드라마 ‘허준’을 통해 등장했다. 고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류의태라는 허구의 인물이 만들어졌다.

동의보감촌에 있는 류의태 제단(가상 묘) 표석에 따르면 허준의 할아버지는 경상우수사를 지낸 허곤(許琨)이고 할머니는 진주류씨이다. 진주류씨인 류의태는 정태마을(현 신안면 문대리 상정), 허준은 여기서 3㎞ 떨어진 신안면 외고리 양지마을(龜潭)에 살아 먼 친척으로 사제 관계를 이룬 것으로 묘사돼 있다. 류의태는 조선 명종 때 명의로 소설에 기술돼 있으나 사실 역사기록엔 없다.

실제 존재하는 명의는 숙종 때의 산청 출신 유이태 선생(劉以泰 1652~1715)이다. 그가 저술한 마진(홍역) 전문치료서 ‘마진방’은 유명하다. 류의태는 진주유씨이나 유이태는 거창유씨이다. 실존 유이태와 가상의 인물 류의태가 뒤섞이면서 드라마와 소설에서 허준의 가치는 더욱 높게 평가됐고 이를 바탕으로 동의보감촌이 만들어졌으니 사실 실소할 일이다. 거창유씨는 지금도 진주류씨 류의태를 거창유씨 유이태로 바꿔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산청군은 난처하다는 입장만 표명할 뿐 외면하고 있다.

허준은 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등촌2동 능안마을(조선시대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에서 아버지 허론, 소실인 영광김씨의 서자로 태어났다. 양천현감을 지낸 겸재 정선과 의성인 구암(龜巖) 허준(許浚 1539~1615)은 교유하며 잘 지냈다. 허준은 선조·광해군 때 사람이고 유이태는 숙종 때 사람이니 시대가 다르다. 그래서 대한한의사협회, 허준박물관, 허준근린공원(구암공원)가 서울시 강서구에 있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류의태란 가상인물을 바탕으로 엄청난 관광단지가 형성됐다니 허탈하다.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만큼 동의보감촌의 스케일과 디테일은 훌륭했다. 동의폭포 앞에서 여섯살바기 아들 놈은 신나게 물장난을 쳤다. 거기 어린이 놀이터에서 부산하게 잘 놀아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은 드물어 거액의 예산이 투입된 동의보감촌이 헛바퀴를 돌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망국의 한을 간직한 구형왕릉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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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촌 다음 목적지는 인근의 구형왕릉(仇衡王陵)이다. 가락국(금관가야)은 김해김씨(金海金氏) 시조인 김수로왕이 김해 벌판에 나라를 세운 지 500여년 만인 10대 구형왕 11년(532년)에 나라를 신라 법흥왕에 넘기고 만다. 구형왕릉은 돌무덤이다. 그 앞에 1793년(정조 17년) 김해김씨문중에서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란 석비를 세웠다. 비록 그의 증손자인 김유신이 삼국통일로 가락국의 영광을 재현했다고 하나 나라를 넘긴 양왕(讓王)으로서 죄인의 심정으로 흙이 아닌 돌로 자기 무덤을 덮었을 것이다. 그는 왕산 자락에 스며들어 수정궁을 짓고 살다가 5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수정궁 터가 지금의 왕산사지(王山寺址, 금서면 화계리)로 구형릉의 서쪽이다.

구형왕릉 남쪽의 덕양전은 구형왕릉의 재실이다. 1793년 종전에 왕산사(王山寺)에서 전해내려온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봉안했다. 경남도문화재로서 건물을 보강해 근사하게 가꿔놨는데 망국의 흔적을 보니 돌무덤의 쓸쓸한 이미지만 더할 뿐이다.

왕산사지에서 상수리나무 숲을 따라 20분을 올라가면 ‘류의태 약수터’가 나오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김유신이 어릴 때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활터가 있다. 사실 구형왕릉이나 활터나 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나오는 것이라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고증된 것은 아님을 밝힌다.

산청 지리산 자락 대원사 계곡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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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을 보고 산청읍과 금서면의 경계를 이루는 구불구불한 길을 아주 힘들게 차로 올라 밤머리재를 넘어 대원사 계곡으로 향했다. 지리산 자락의 대원사는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으로 금강송 소나무숲과 다층석탑(보물 1112호)가 수려하다. 청정한 물길이 사시사철 여기를 감돌아 계림정숲, 송정숲, 내원사 계곡, 덕천서원 및 남명 조식 유적지로 흘러나간다. 대원사 남쪽의 내원사 계곡은 아기자기한 활엽수가 조화된 숲이 봄이면 다양한 초록과 연두로 농담(濃淡)의 수를 놓는다.

산청의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는 지리산과 가까운 산청 남서쪽 중산관광지가 추천된다. 시천면 중산리 일대로 중산리계곡, 거림계곡이 폭도 넓고 평탄하고 물도 맑아 일품이다. 중산리계곡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 있다. 근처엔 빨치산토벌전시관, 지리산 성모상(삼신할머니상)도 있다. 중산리 버스정류소(탐방지원센터)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가 6.5㎞이다. 정류소에서 로타리대피소(정류장)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로타리대피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국내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은 해발 1450m 고도에 법계사가 있다.

단속사지의 두개의 삼층석탑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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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法界寺)는 신라 진흥왕 5년(54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진신사리를 모시고 창건하였다.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의 기운이 쇠한다고 하여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에게 패한 왜군(아지발도)에 의해 불탔고, 1405년(태종 5년) 벽계 정심(正心) 선사가 중창했다. 임진왜란과 한일합방(1910년)에 다시 일본군에 의해 불탔다. 1938년 복원됐다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또다시 불타 초가집 형태로 남아 있다가 1981년 법당과 산신각, 칠성각 등이 재건되면서 겨우 절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경내 산신각 앞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고려 초기의 삼층석탑이 눈길을 끈다. 높이 3.6m의 커다란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고 높이 2.5m 되는 삼층석탑이 올라선 게 특이하다.

대원사 계곡으로 둘러본 곳이 남명 조식 유적지다. 인근의 한국선비문화연구원과 덕천서원은 시간 관계상 견학하지 못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년)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년)과 동시대를 살았다. 퇴계는 경상좌도(慶尙左道) 예안현(안동) 온계리에서, 남명은 경상우도(慶尙右道) 삼가현(합천) 토동에서 태어났다. 퇴계가 경상좌도 사림, 남명은 경상우도 사림의 영수였다. 둘 다 영남학파에 동인으로 분류됐지만 훗날 이황의 제자는 남인(퇴계학파), 조식의 제자는 북인(남명학파)이 됐다. 북인은 쉽게 말해 광해군을 적극 옹립했던 세력이다.

남명은 경(敬)으로서 나를 밝히고 의(義)로서 나를 던진다는 선비정신을 강조했다. 늘 경으로써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애달파했으며 달 밝은 밤이면 홀로 앉아 슬피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의를 중시한 까닭에 임진왜란 의병장의 절반이 남명의 제자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남명의 수제자였던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은 강직했고 1592년 5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북인의 영수였다.

조식은 중종, 명종, 선조 때 세 번에 걸쳐 벼슬을 받았지만 모두 사양했다. 그는 벼슬이 없고 깨달음의 경지가 높은 처사(處士)로서 일생을 마감했다. 의리와 실천, 애민을 강조했던 그의 깊이와 넓이는 컸으나 퇴계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인조반정 이후 정인홍의 몰락과 이를 전후로 한 북인의 분열과 소멸에 따른 것이다.

조식 유적지의 산천재(山天齋)는 61세 때인 1561년 진주 덕산(지금의 산청군 시천면 운리)의 사륜동(絲綸洞)으로 거처를 옮겨와 죽을 때까지 강학한 곳이다. 산천재 뒤편 산기슭에는 남명 탄생 500주년을 맞은 2001년 설립을 추진해 2004년 8월에 문을 연 남명기념관이 있다. 그 앞뜰에 지리산을 등지고 하얀 옥돌로 조각한 남명 선생의 석상이 있다. 선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상소문도 돌에 새겨져 있다. 이 곳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이 남명의 학문과 사상을 기술했다. 여재실은 창녕 조씨 문중에서 남명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묘가 있는 곳이다. 조식 묘도 여기에 있다.

조식 유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시천면 원리에는 덕천사원(德川書院)과 세심정(洗心亭)이 있다. 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년) 남명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최영경(崔永慶, 1529~1590), 하항(河沆, 1538~1590) 등 그의 제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옆에 지리산에서 발원해 산청군, 진주시, 하동군, 사천시, 하동군 등지를 흐르는 덕천강이 흐른다.

산청삼매(三梅)라 불리는 고매(古梅)가 있다.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남사마을의 원정매(元正梅) 등이다.

남명 조식 선생이 강학한 산천재 옆 남명매 ©헬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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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매는 산천재 앞에 남명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500년이 훨씬 넘은 매화다. 지리산 청왕봉을 바라보며 산천재 뜰을 지키는 기품이 고즈넉하다. 봄을 기다리듯 태평성태를 기원했으나 현실은 이와 다르고, 가장 먼저 흩어지는 낙화의 안타까움을 해마다 바라보며 세월의 덧없음과 권력무상도 함께 느꼈으리라.

단성면 운리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단속사지의 정당매는 고려말~조선초 정당문학(政堂文學)이란 벼슬을 지낸 진주강씨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 절에서 과거시험 공부를 하여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렀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600년을 훌쩍 넘긴 고매다.

단속사(斷俗寺)는 통일신라시대 제35대 경덕왕 7년(748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보물 제72호인 단속사지동삼층석탑과 보물 제73호인 단속사지서삼층석탑이 원위치에 있다. 제법 웅장한 탑이었다. 당간지주, 금당지(대웅전터), 강당지 등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라시대의 가람 배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금당지에 민가가 파고 들어 옛 자취가 희미하다. 웅장한 석탑도 그저 이 마을의 자연처럼 어우러져 있다.

단속사란 이름은 속세와 연을 끊는다는 의미다. 763년 신충이 두 친구와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는데, 왕이 두 번이나 불러도 나오지 않고, 승려가 돼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짓고 죽을 때까지 왕의 복을 빌겠다고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고 한다.

남명 조식과 휴정 서산대사, 유정 사명대사 등은 단속사에서 서로 유생과 불사로서 교류했다. 휴정은 여기서 삼가귀감이란 불저를 남겼다. 그러나 성여신(成汝信 1546~1632) 등 당시 혈기방장한 약관의 유생들이 단속사의 삼가귀감 목판본을 태웠고 이를 계기로 서산대사는 다시는 북녘으로 홀연히 떠나 다시는 남쪽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젊은 유생들은 삼가귀감이 유가귀감보다 뒤에 놓였다는 이유로 분기탱천해 이런 일을 자행했는데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남명은 “공자의 광간(狂簡)을 취했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단성면 남사마을 하씨 고가의 원정매는 고려시대 말기의 문신 원정공(元正公) 하즙(元正公 河輯, 1303~1380)이 심은 나무이다. 정확히 몇 년에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즙이 37세(1340년)에 심었다고 가정하면 이 매화나무의 수령은 680년에 달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로 꼽힌다. 그러나 이 나무는 너무 늙어 2006년부터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나고 죽는 생명의 법칙은 엄혹한 겨울을 이겨내고 혼신의 힘을 다해 꽃망울을 틔워내려는 매화의 억척스러움마저 봐주는 법이 없다.

남명 유적지에서 동쪽으로 수 ㎞를 달리다보면 백운동계곡이 나온다. 조금 더 동쪽으로 수 ㎞를 가면 남사예담촌이다. 백운동 계곡은 웅석봉이 남으로 흘러내리는 산자락에 있다. 목욕을 하면 아는 것이 절로 많아진다는 다지소(多知沼)와 백운(白雲)폭포, 다섯곳의 폭포와 담이 있는 오담(五潭)폭포, 계류의 물보라가 세 물살이 하늘로 오른다는 등천대(登天臺)가 아기자기한 절경이다. 남명의 글씨가 암석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이밖에 산청의 이름난 계곡으로는 고운동·오봉·자막·선유동 계곡이 있다.

남사리 고택촌은 옛 담장이 아름답다 하여 예담촌이란 별칭을 붙였다. 마을의 문화재로는 ‘최씨고가’(경남 문화재자료 제117호)’, ‘이씨고가’(제118호)’, ‘면우곽종석유적’(제196호)’, ‘사양정사(제453호)’가 있다. 마을의 토담과 돌담(길이 약 3200m)은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이라는 명칭으로 등록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돼 있다.

이 마을의 상징수는 이씨고가 입구의 ‘부부 회화나무’다. 학자수(學者樹)라 불리며 회화나무(槐花 또는 홰나무, 괴화인데 회화로 읽음)는 중국 주(周)나라 때 삼공(三公, 삼정승)이 이 나무 아래서 정사를 논의했다고 해 학식, 입신양명, 선비정신, 악귀 퇴치의 상징이 됐다. 그래서 고가나 궁궐, 서원, 항교 등에 많이 심어져 있다.

수령이 310년쯤 되는 이 곳 부부회화나무는 ‘×’자 형태로 서로 마주보며 다가가고 한 나무가 조금 더 커서 부부가 서로 의지하듯 금슬 좋게 보인다. 이씨고가는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1700년대에 세워졌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정감어린다. 남북으로 긴 대지 위에 사랑채, 안채, 곳간채, 외양간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곳간채가 떨어져 한 곳 더 있고, 사당이 바로 붙어 있다. 사당은 보통 집 뒤 높은 지형이나 집 멀리 떨어져 있는데 곁에 두고 담을 두르고 문으로 드나들게 돼 있다. .

이 마을엔 예부터 성주이씨(星州李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진주하씨(晉州河氏), 경주최씨(慶州崔氏) 등이 모여 살았다. 최씨고가는 높은 담장이 위압적이다. 기역자로 꺾어 들어가면 사랑채와 안채가 나온다. 필자가 방문할 당시에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양정사(泗陽精舍)응 구한말의 유학자 정제용(鄭濟鎔, 1865~1907)를 기리는 정사(사당)다. 대문채와 본채가 각 7칸으로 솟을대문이 높고 옆면은 2칸이면 팔작지붕이다. 그의 아들 정덕영(鄭德永)과 장손 정정화(鄭鍾和)가 1920년에 만들었다. 건립 후 자식들을 교육하거나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쓰다가 지금은 한옥 스테이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다. 다락이나 벽장 등 수납공간이 넓고 유리를 사용해 근대 한옥의 변화상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다.

이밖에 예담촌에는 영모재(永慕齋) 사효재(思孝齋) 등의 옛집과 이제개국공신교서 등이 있다. 성주이씨인 이제(李濟 ?~1398)는 1392년(태조 1) 개국일등공신으로 공신녹훈교서(功臣錄勳敎書)를 받았다. 개국공신녹권은 국보 제232호인 이화개국공신녹권(李和開國功臣錄券)을 비롯해 몇 점이 남아 있지만, 교서는 이것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사례여서 국보 제324호로 지정됐다. 진본은 국립 진주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이를 새긴 비가 마을 한켠에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정공신(正功臣)에게는 교서와 녹권(錄券)을 주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교서는 국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인 반면 녹권은 공신도감(功臣都監)이 국왕의 명령에 의거해 발급해 주는 증서였다.

고려말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우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인 이제는 음서로 벼슬길에 올랐다. 전법판서로 있으면서 정몽주(鄭夢周)의 제거와 태조의 즉위에 크게 공헌했다. 이제는 성주이씨로 이 동네에서 세거했다. 태조의 세번째 사위로 차비(次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 소생인 경순궁주(慶順宮主)의 남편이었다. 흥안군(興安君)에 봉해졌으나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 일파로 몰려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살해되었다. 후사가 없어 조카 이윤(李潤)이 뒤를 이었고 시호는 경무공(景武公)이다.

이밖에 산청군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대성산 신등면 양전리 대성산 기슭의 정취암(淨趣庵)이다. 대성산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그 풍경이 소금강에 비유될 정도다. 신라시대 686년(신문왕 6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바위 끝에 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면 온갖 번뇌를 잊고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 든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문익점이 목화를 처음 들여와 재배한 목면시배유지, 문익점 묘, 문익점 신도비, 도천서원신안사재(道川書院新安思齋, 문익점 사당, 신안면 신안리)를 둘러볼 만하다. 산청은 문익점의 연고지다. 서원으로는 목면시배유지 옆의 배산서원(培山書院 단성면 사월리), 신계서원(新溪書源 신안면 문태리), 대포서원(大浦書院, 생초면 대포리) 등이 있다. 항교는 산청향교(산청읍)과 단성향교(단성면) 등 두 곳이다. 산청은 한우, 흑돼지, 산채정식, 다슬기 수제비 등이 먹을 만하다. 산청한우는 약초를 먹여 키워 육질이 최상급이라하며 흑돼지는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 졸깃졸깃하고 담백하되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산청약초축제는 과거에는 봄에 열렸으나 최근에는 매년 9월말이나 10월초에 개최되고 있다.

산청군이 뽑은 산청 8경

1. 지리산 천왕봉 :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 경계에 솟은 지리산 최고봉. 해발 1915m로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다.
2. 황매산 철쭉  :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황매산(해발 1103m) 아래 고원(800m) 지대 60만㎡ 규모의 철쭉 군락지. 해마다 5월초에 축제가 열린다.
3. 대원사 계곡 : 집채만한 너럭바위와 넓고 깊은 계곡이 지리산에서 발원한다. 유평계곡까지 12㎞를 달린다. 봄엔 벚꽃, 초여름엔 활엽수의 향연도 볼 만하다.
4. 구형왕릉 : 가락국 마지막 왕의 쓸쓸한 옛무덤. 양식과 느낌이 독특하다.
5. 경호강 비경 : 여름철 래프팅하며 주변의 비경을 보기에 좋다.
6. 남사예담촌 : 고택과 옛 담장이 아늑하고 운치 있다.
7. 남명 조식 유적지 : 북인을 태동한 남명학파의 거두를 음미해본다.
8. 대성산 정취암 : 산청의 소금강이라 할 만큼 대성산의 기암절벽과 옛 암자의 조화가 속세를 잊게 한다.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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