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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우리 전통주, 서양술에 뺏긴 자리 되찾을 수 있을까
입력일 2014-09-03 11:08:52 l 수정일 2016-02-18 03:31:44
지방 특색따라 술 종류 다양해 … 일제강점기 주세법에 의해 대부분 사라져

일제강점기때 주세법에 의해 차츰 사라졌던 전통주가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헬스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술을 즐겨마셨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술은 약이자 음식이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당시 거리엔 술병을 들고 취해 비틀거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권한 왕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났지만 백성부터 왕실까지 질펀하게 술을 먹는 풍조가 유행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이 아침 조회를 마치고 신하들에게 술을 내려 위로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죄수에게도 자주 술을 내렸다. 이는 일종의 통치행위로 술과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어느 역사가는 요즘의 방종한 음주문화는 조선시대 음주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발효음식의 종주국’이라 불릴 정도로 곡물을 이용한 발효음식이 발달했다.사계절이 뚜렷한 기후가 이런 발달에 큰 영향을 줬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세균으로 음식이 상하거나 냉기에 얼어버려 따로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거나 발효시키는 등 특정한 방법으로 저장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것을 먹을 수 없었다.

술은 어떻게 발효하는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중국 진나라 진수(陳壽)가 엮은 ‘위지동이전’을 살펴보면 고구려의 발효기술은 뛰어나 주조와 장담그기가 발달했다고 적혀있다. 이런 고구려의 주조기술은 중국까지 소문이나 중국 명주 중 하나로 꼽히는 ‘곡아주’를 탄생시켰다. 고구려 이외의 신라와 백제도 주조기술을 일본에 전수했다.

각 지방의 특색에 맞게 전통주도 다양하다. 조선시대 문헌들을 살펴보면 대략 380여종의 전통주가 발견된다. 문헌에 없는 술을 포함하면 그 수는 헤아리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전통주의 종류는 이 수에 훨씬 못 미친다. 그 이유는 일본의 지배 탓이 크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인 1909년 주세법을 발효해 우리 술의 제조와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1927년 통합된 곡자제조회사를 통해 일정한 누룩만을 쓰도록 했다. 일본의 이런 강압적 정책은 세금 수입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효율적으로 세금을 걷기 위해 전국의 양조장을 통폐합했다. 집안마다 만들어온 가양주 제조를 금지하고 밀조주에 대한 단속도 강화했다. 결국 대대손손 내려오던 전통주의 맥도 서서히 끊기고 말았다.

친일파로 비난받는 육당 최남선은 1946년 지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술의 격을 로(露), 고(膏), 춘(春), 주(酒) 순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전북 전주의 ‘이강주(梨薑酒)’, 전북 정읍의 ‘죽력고(竹瀝膏)’, 평양의 ‘감홍로(甘紅露)’를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

‘이강고’로도 불리는 이강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배와 생강이 주로 들어간다. 울금, 계피, 꿀도 재료가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임원십육지’를 보면 ‘아리(배의 품종 중 하나)의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고운 베주머니에 걸러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받친다. 배즙, 적당량의 꿀, 약간의 생강즙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는다’고 이강주의 제조법을 설명한다. 울금, 계피 등은 일제강점기에 첨가되기 시작했다. 도수가 높고 생강과 계피 때문에 매운맛이 나 가볍게 즐기기엔 힘들다. 

대나무가 생육하기 좋은 전북에서 대나무술이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죽력고는 ‘죽력’이 매우 중요하다. 죽력은 푸른 대나무를 쪼개 항아리에 넣고 열을 가해 얻어진 대나무 기름으로 소량만 생산된다. 한방에서는 약으로 쓰이는데, 맛이 느끼해 술에 조금씩 넣어 마시는 게 좋다.
이 술은 ‘녹두장군’ 전봉준과 인연이 깊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벌였던 그는 한양으로 압송될 때 혹독한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이 술을 처방약으로 마셔 원기를 회복했다고 한다. 한 모금 마시면 독주의 쏘는 듯한 느낌 뒤로 은은한 대나무 향이 묻어난다. 뒷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감홍로는 평양을 대표하는 술이다. 냉면, 골동반(骨董飯, 섣달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비비는 밥)과 더불어 평양의 3대 명물로 꼽힌다. ‘별주부전’에서는 별주부가 토끼를 꼬드길 때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회유하는 대목이 있다. 춘향이가 이몽룡이 한양에 올라간다고 할 때 붙잡고 마셨던 술로도 유명하다. 또 평양감사보다 더 높은 관직을 주려는 제안을 ‘감홍로 때문에 못 떠난다’며 거절했다는 평안도 감사의 일화도 전해진다.

이 술은 용안육, 정향, 진피, 계피, 생강, 지초, 감초 등 8가지 약재가 들어간 약용 소주다. 궁중에선 약을 끓일 시간도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일 때 약 대신 급히 감홍로를 처방하기도 했다. 용안육, 계피, 감초에서 나는 단맛의 감(甘), 지초가 내는 붉은 빛의 홍(紅)을 써 술의 이름이 감홍로가 됐다. 향미가 진하지만 뒷맛이 깔끔해 목넘김이 부드럽다.

전통주는 크게 양조주, 증류주, 혼성주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양조주는 탁주와 청주로 나뉜다. 막걸리는 크게 보면 탁주에 속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보면 ‘흉년에 나라에서 금주령을 내렸을 때 어기는 백성은 엄히 다뤄야 하지만 탁주는 요기도 되는 만큼 그냥 넘어간다’고 기록돼 있다. 주원료인 쌀, 보리 등 곡식으로 밑밥을 지어 발효시킨 후 찌꺼기를 걸러내 만든다. 술 찌꺼기(지게미)는 비싼 술을 사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술 대신에 먹기도 했고, 술빵(술떡)으로도 제조됐다.

청주는 보통 한랭하고 공기가 청정한 겨울에 빚는다. 쌀을 찐 다음 누룩과 물을 더해 며칠 두면 효모균과 술효모가 생긴다. 독에 넣고 같은 과정을 3번 반복해 섞으면 효모균의 작용으로 술이 된다. 이것을 30∼35일간 깨끗한 곳에 두면 맑은 청주가 된다. 일본의 주세법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청주다. 일본의 사케와 비슷하단 이유로 일본주와 통합돼 대부분 사라졌다.

대표적인 증류주가 소주다. 오늘날 먹는 소주는 공장에서 제조한 희석식으로 온갖 곡류에 발효능력이 왕성한 효모균을 넣어 최대한으로 많은 알코올(주정)을 얻어낸 다음 물에 타서 만든다.
이에 비해 전통적인 소주는 증류식이다. 조선시대에는 먹기도 아까운 쌀로 밑술을 만든 다음 이를 증류해 소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흉년이 들면 종종 소주의 생산이 금지되기도 했다. 양조주에 비해 만들기가 까다로워 생산되는 양도 적었다. 그렇다보니 양반들도 작은 잔에 조금씩 따라 약을 먹듯이 마셨다. 소주잔이 작은 이유와 ‘약주’라는 말이 생긴 게 이 때문이다. 증류식 소주도 일본의 주세법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명맥이 끊겼다. 게다가 5.16 쿠데타 후 양곡정책에 의해 제조가 금지돼 씨가 마를 정도로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하지만 사정이 거꾸로 변해 쌀이 남아돌자 1991년 7월 1일자로 증류식 소주는 부활했다.
대부분 증류식 소주는 도수가 높다. 시중에 판매되는 것은 평균 45도로 다른 술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원래의 술에 들어있던 향기도 증류액에 고스란히 남아 향도 좋다. 

혼성주는 증류식 소주에 과일이나 열매를 넣어 만든다. 오늘날에는 증류식 소주 대신 희석식을 주로 사용한다. 넣는 재료에 따라 풍미가 달라져 만드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제조할 때 오래 삭히면 독이 나오는 재료도 있어 이를 확인해야 한다.

정종우 기자 salsa@jos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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