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의 까칠 건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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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현실에 엇나간 한글 맞춤법·문법 … 편리성·정확성 중심 개선 필요
입력일 2019-10-09 13:11:50 l 수정일 2019-10-14 17:06:32
외래어 난립 억제 못잖게 효율성 살리는 언어구사 중시돼야 … 한자 빠진 한글교육 ‘절반짜리

경기도 여주 영릉 입구의 세종대왕상
기자로서 자주 글을 쓰며 한글의 오용을 막기 위해 여러 국어 전문가의 글쓰기 교본이나 관련 칼럼을 수시로 읽고 교정하려 애쓴다. 나 자신의 문법이나 언어구사도 100% 완전하지 않을 뿐더러 신문기사의 특성상 국어연구원에서 제정한 맞춤법 가운데 띄어쓰기 같은 부분은 편의상 일부러 지키지 않기도 한다. 국어학자들이 지적하는 걸 알면서도 관용화된 기사식 표현을 답습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후배에게 잘못된 한글 사용에 대해 지적하면서 기자도 배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산업화,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한글의 역할이 크다. 한국이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고도성장을 일궈낸 건 쉬운 문자를 가진 덕분이다. 문맹을 쉽게 탈피해 책이나 신문 등을 보고 대중의 지적 수준과 자아의식이 높아졌고 이는 자유·민주·평등·번영을 향한 높은 욕구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맥락이다. 

세종대왕이 양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대중은 더 오랜 기간 무지의 어둠 속에서 헤맸을 것이다. 한글이 조선시대에 더 널리 통용됐더라면 조선왕조는 더 일찍 붕괴됐을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앞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가 앞당겨져 요즘처럼 주변 4강에 시달리는 억울함이 덜했을 것이다. 

해마다 한글날이면 과다한 외래어(영어·불어 등) 사용, 일본어 잔재가 남아 있는 언어습관, 청소년들의 반사회적 모습으로도 비쳐지는 은어·비어 일상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다 옳은 지적이지만 정확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글 표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기에 이를 부각시켜본다. 

우선 수치 표현에 대한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주 온열질환 환자가 145명으로 직전 주 52명 대비 3배 급증했다”는 표현을 보자. 여기서 ‘3배’는 ‘3배로’로 고쳐져야 맞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3배 증가했다’로 기술한다. 또는 2.8배(반올림)로 늘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데 한국인의 언어관행은 이를 3배로 쳐준다. 이런 관행이 중요한 경제지표(국민소득이나 회사 매출 등)나 정치수치(투표율, 지지율 등)에 적용되면 이해관계에 따라 논란이 생길 소지도 있다. 

특정 비율이 10%에서 30%로 올라갔다면 이는 ‘20% 포인트 증가’ 또는 ‘200% 증가’ 또는 ‘3배로 증가’ 또는 ‘2배 증가’로 달리 말할 수 있다. 이를 ‘3배로’가 아닌 ‘3배’로 표현하면 해석에 혼동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언론을 비롯한 일반인의 글쓰기 관행에서 정확한 수치표현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을 나열할 때 A와 B, C, D 같은 영미식 표현이 쓰이고 있다. A와 B가 C, D에 비해 특별한 관계가 아닌데도 이런 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냥 A, B, C, D 등으로 단순 나열하면 된다. 이게 바로 한국식 표현이다. 예컨대 ‘당뇨병과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 성인병’이라고 표현하면 당뇨병과 고혈압은 뇌졸중이나 심장병에 비해 더 밀착된 관계인가. 글 쓴 사람의 마인드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들 질병을 단순 나열하는 뜻에서 썼다면 굳이  A and B, C, D 같은 영어식 표현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쉼표(반점)와 가운데점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 중동 국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쓰면 쉼표가 난립해 복잡해 보인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예멘 등 중동 국가,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정리하면 매끄러워 보일 것이다. 가운데점은 열거된 여러 단위가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쓴다. 

외래어(주로 영어) 표기법에도 문제가 많다. 원어민이 쓰는 영어 발음을 채택한 것도 아니고, 언어현실을 감안해 한국인이 주로 소리내는 대로 표기한 것도 아니다. 궁색한 원칙을 갖다댈 게 아니라 영어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라도 아예 가장 공신력 있는 영어사전, 기왕이면 미국에서 발간한 사전을 기준으로 원어민 발음을 최대한 반영한 표기법을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 카펫(○) 카페트(×), 재스민(○) 자스민(×), 애드리브(○) 애드립(×), 랑데부(○) 랑데뷔(×), 뷔페(○) 부페(×), 슈퍼마켓(○) 수퍼마켓(×), 바베큐(×) 바비큐(○), 초콜릿(○) 초콜렛(×), 텔레비전(○) 텔레비죤(×) 텔레비젼(×) 등을 구분할 줄 아는 일반인이 몇이나 될까. 

도로 교통표지판의 한자 간자체 표기는 과연 주체의식이 있는 걸까. 중국 본토인이 사용하는 간자체를 쓰면 타이완·일본 관광객이, 번자체(한문 정자)로 쓰면 중국 관광객이 소외된다고 한다. 간자체, 번자체 모두 병기하면 된다고 하지만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서 좁은 표지판에 촘촘히 한자를 박아 놓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띄어쓰기도 보조용언을 본용언(또는 본체언)에 무조건 붙여쓰도록 통일하는 게 맞다. 굳이 국어학자도 아닌 일반인이 ‘구멍 난, 사랑 받는, 용서해 주는’ 이런 식으로 띄어 쓸 필요가 있을까. 구멍난, 사랑받는, 용서해주는 등이면 충분하다. 복합어를 쓸 때에도 인공위성, 임상시험, 설문조사 처럼 붙여 쓰는 게 합당한 데도 많은 사람이 인공 위성, 임상 시험, 설문 조사 등으로 띄워 쓴다.  두 단어가 합쳐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복합어의 개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붙여쓰는 게 활자상 공간을 덜 차지하고 의미가 간명하게 들어온다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맞춤법을 바꿨다가 뒷말이 무성하니까 짜장면과 자장면을 동시 표준어로 정한 것만 봐도 국어학자의 말장난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형용사인 후지다(품질이나 성능이 다른 것에 비해 뒤떨어지다)가 과거 비속어에서 표준어로 된 것처럼 일반인의 언어관행을 살펴 아주 저속한 언어가 아니라면 표준어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사이시옷의 남용을 부추긴 맞춤법도 문제다. 예컨대 장미빛, 장마비, 선지국은 틀리고 장밋빛, 장맛비, 선짓국이 맞다. 장마철에 내리는 비가 간장맛이 나는 비라 장맛비인가. 시냇물, 혼잣말 정도만 예외로 두면 될 것을 굳이 한자이거나 한자 어원을 가진 모든 앞말 뒤에 사이시옷을 넣고 뒷말을 붙이는 졸속을 만들어냈다. 

기초적인 한자교육이 부족하다보니 맞춤법도 틀리기 십상이다. 예컨대 십상(十常)은 십상팔구(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에서 왔다. 그러니 ‘쉽상이다’는 틀린 표현이다. ‘틀리기 쉽다’에서 연상해 쉽상이라고 쓰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순식간(瞬息間), 도대체(都大體), 대개(大槪) 등도 한자에서 왔다. 국어 단어 중 한자이거나 한자 유래인 게 70%를 웃돈다. 한자교육이 빠진 한글교육은 절반에 불과하다. 

아울러 축제(祝祭), 연인(戀人), 담합(談合), 할인(割引), 미래(未來), 고지(告知), 노임(勞賃), 수순(手順) , 익일(翌日), 가불(假拂), 내역(內譯) 등 일본식 한자를 각각 잔치, 애인, 짬짜미, 깎음, 앞날, 알림, 품삯, 순서, 다음날, 선지급, 명세 등으로 우리말 또는 우리식 한자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순혈주의처럼 자국 고유 단어만 고집하면 언어의 확장을 통한 발전이 막힌다. 치욕적인 일제 지배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면서 과도하게 배척하거나 오염된 단어라고 낙인찍는 것은 긴요긴급한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의학담당 기자로서 내분비선(內分泌腺), 전립선암(前立腺癌), 신장(腎臟), 설하선(舌下腺) 등을 굳히 내분비샘, 전립샘암, 콩팥, 혀밑샘 등으로 순화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한글과 한자가 섞여 있어 어색한 느낌이다. 신장암은 국어사전에 올랐어도 콩팥암은 사전에 없다. 무리한 한글 순화는 언어의 통일성과 이해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사를 자꾸 명사나 동사에서 띄어쓰는 경향이 있다. 알고도 일부러 그런 것 같다. 특히 ‘이다’, ‘하다’, ‘되다’, ‘보다’, ‘에서’ 등 보조용언이나 조사를 앞말에 띄어 써 앞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스마트폰 문자메시지가 일상화되면서 이런 경향이 생겼고 실제 글쓰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신문기사에서도 젊은 기자들의 이런 행태가 촉박한 마감시간 탓에 교정되지 않고 활자화되고 있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국어학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한국인이 편안하게 한글을 쓸 수 있도록 문법체계나 맞춤법을 간소화하고 근본적인 요소가 아니라면 기존 문법을 흔들지 말라고. 학생이나 교사는 물론 기성세대조차 달라진 언어 체계 적응에 힘들어한다. 

오늘날 기자를 ‘기레기’라고 폄하하는 대중이 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세력이나 이해집단에 편중된 주장을 편 기자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기사를 빨리 올린다며, 내용만 전달되면 됐지 문법이나 맞춤법 틀린 게 뭐가 대수냐며 한글의 오용을 방치한 무책임만으로도 ‘기레기’란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터넷 매체가 많아지고 글의 품질관리가 엉망이 되면서 국어를 가장 많이 쓰고, 이를 밥벌이로 하는 기자들의 한글 오용이 방치되고 있다. 어렸을 때 신문기사에 나오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100% 맞는 걸로 알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니 기자는 국어의 수호자인가, 오염 촉진자인가. 

한글의 표기법은 1930년대까지도 정해진 바가 없어 들쑥날쑥했다. 김소월, 정지용, 백석 등의 시집 초본을 보면 훤히 알 수 있다. 그동안 조선어학회 등 선배 국어학자들의 노력으로 통일된 맞춤법과 문법이 가다듬어졌고 지금도 그 작업은 진행 중이다. 훈민정음 반포 573돌이 되는 오늘, 한글이란 문자가 세상에 나온 지는 오래 됐으나 막상 지금 쓰이는 한글의 연륜이 90년도 채 안 됐음을 상기할 때 개선해야 할 한글 사용 관행이 산적하다. 한글의 안정화, 고효율화는 지금도 미완이다. 
정종호 헬스오 기자 ©헬스오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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