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호의 까칠 건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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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인가 밀인가. 밥이 여전히 한국인의 ‘밥심’인 까닭
입력일 2019-08-12 11:25:27 l 수정일 2019-08-14 11:02:18
쌀이 당뇨 주범이란 건 ‘누명’ … 쌀 증산 위해 ‘통일벼’ 먹다 최근 ‘기능성쌀·즉석도정쌀로 선택지 넓어져

정종호 헬스오 기자
18년 전 기자가 쓴 글을 오랫만에 읽어보니 쌀이냐, 밀이냐 논쟁을 매우 ‘애국적인(patriotic)’인 견지에서 논했다. 식량무기론, 민족생존론의 관점에서 쌀 소비를 줄이게 되면 미국 등 식량수출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없고, 민족문화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는 논지를 폈다. 또 농민 생계 보장, 국토의 효율적 사용, 수자원 보호, 환경오염 방지 차원에서 논을 살리고 쌀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보다 국가주의가 퇴색하고 개인행복주의가 한창인 지금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건강과 미각적인 만족도에 중점을 두고 우리가 왜 쌀밥 소비를 줄이면 안 되는가를 말하는 게 맞겠다.

젊은층을 비롯해 요즘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쌀밥을 안 먹는 이유는 빵·케이크·피자·파스타·라면·햄버거·중국식·과자류 등으로 열량 섭취원이 대거 이동했기 때문이다. 증가한 육류 소비를 논외로 하더라도 확실히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밥심’이 아니라 ‘빵심’, ‘파스타심’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쌀은 당뇨병 등 성인병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홀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 쌀밥의 높은 GI(당지수)를 근거로 당뇨를 유발한다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도정된 밀가루로 만들어 설탕이 다량 첨가된 빵도 GI가 높긴 마찬가지다. GI는 쌀밥이 92, 바게트빵이 93, 호밀빵이 64다. 

GI는 포도당 100g을 섭취했을 때 혈당상승 속도를 100으로 잡았을 때 각 음식을 100g씩 먹었을 때 혈당이 상승하는 속도를 0~100의 상대값으로 산출한다. 혈당이 빠르게 상승하면 이를 제압하기 위해 인슐린이 과잉 분비되고 이로 인해 체지방이 축적돼 비만이 촉진되고 장기적으로는 췌장 기능이 쇠퇴해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당뇨병 환자가 쌀밥만 먹는 것은 분명 해롭다. 그러나 당뇨병은 섭취원이 무엇이든 적정량을 초과하는 열량을 섭취할 때 발생하므로 쌀밥만 갖고 때리는 것은 억울할 일이다. 쌀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고 있다. 쌀밥이 당뇨병을 유발한다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지역의 당뇨병 환자 유병률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쌀의 누명을 벗겨준다. 

세계보건기구(WH0)나 학술논문에 따르면 아시아의 당뇨병 유병률은 나라마다 차이가 나지만 8.5~10% 수준이다. 한국은 10%를 약간 웃돈다. 미국은 2015년 기준 9.4%다. 유럽(25세 이상)은 남자 10.3%, 여자 9.6%이다. WH0는 전세계 18세 이상 당뇨병 유병률이 1980년 4.7%에서 2014년 8.5%로 급상승했다는 공식 통계를 내놨다. 앞으로도 상승세는 좀처럼 꺾일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아시아인이 음식섭취량이 늘리고 서구식 식단을 추구하며 수명이 길어지면서 당뇨병 유병률 상승 속도가 서구인에 비해 가파르다는 점이다. 인종적으로도 아시아인은 타고난 췌장기능이 약해 인슐린 분비능력이 서구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게 이미 연구로 밝혀져 있다.

쌀은 탄수화물을 주성분(70~75%)으로 하고 단백질을 7~8% 함유하며, 지방질이 2%, 미네랄이 1%, 비타민과 기타물질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쌀의 단백질은 수용성 단백질인 글루텔린이 주성분이어서 위산에 잘 분해돼 소화가 잘 되는 편이다. 쌀의 단백가(필수아미노산의 질과 양을 수치화한 것)는 78로서 빵의 44보다 높다. 식물성 단백질 중에서는 영양적으로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비타민 성분으로는 비타민B1·B2·B3·비타민E 등을 함유하며 A와 C는 없다. 무기질로는 인·칼륨·마그네슘·칼슘 순으로 함량이 높은데 인이 아주 많고 칼슘 함량이 매우 적은 게 특징적이다. 

쌀의 미각은 어떠한가. 미식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이 밥맛에 대한 미각을 잃었다고 걱정한다. 윤기나게 한알 한알 살아 있는 듯 꼬들꼬들 지어진 밥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미식이다. 맛이 담백하고 오래 먹어도 물리지 않는 미덕을 지녔다. 입맛 없을 때 찬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 또 하얀 쌀밥에 열무김치나 잘 삭힌 배추김치가 벌건 국물과 함께 배면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입속으로 쑥 들어오면 그 조화가 일품이다. 된장, 고추장, 젓갈과의 마리아쥬도 멋드러진다. 과거 청나라 사람들은 조선의 밥짓는 솜씨와 밥맛이 일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기분이 저조하다’, ‘재수 없다’는 의미로 ‘밥맛이야’란 표현을 쓴다. 케이크 같은 달달한 음식에 미각이 둔화돼 쌀밥의 밋밋하고 깊은 속맛을 잃었는가 싶다.

또 한가지 요즘 젊은층이 쌀밥을 기피하는 요인엔 사람의 체질과 음식의 기미(氣味)가 작용한다. 한방체질의학 이론을 빌리면 쌀은 성질이 평온하기 때문에 서양인보다 음적인 체질을 갖은 동양인에게 맞는다는 설명이다. 반면 밀은 약간 서늘한 성질을 갖기 때문에 동양인보다 양적 체질에 몸이 더운 서양인에 맞다는 이론이다. 사상체질로 보면 마르고 소화기능이 약하며 배가 차고 소심한 소음체질인 사람이 밀가루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쓰리며 트림이 심해진다. 반면 밀가루음식은 태양인이나 소양인에게는 권장할만한 음식에 해당한다.

요즘 젊은층은 영양공급과 발육상태가 좋아지고 체질도 서구인과 많이 닮아져가고 있어 밀가루음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어린이들이 밀가루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엔 기본적으로 열이 많아 상대적으로 서늘한 밀을 좋아하게 돼 있다는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더욱이 밀가루로 가공한 식품 중에는 기름에 튀겨 고소한 게 무척 많다.

밀가루음식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최근 많이 알려졌다. 밀가루음식 알레르기는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황사·미세먼지에 의한 알레르기에 버금간다. 밀가루에 함유된 식물성 단백질인 ‘글루텐(gluten)은 일종의 알레르기로 소화불량, 소아지방변 같은 글루텐성 장질환을 일으킨다. 특히 아동에선 소아지방변증이 성장저해를 일으키고 정신과적 문제로 비화돼 편두통이나 자폐증과 흡사한 행동변화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보도한 바 있다.

밀, 호밀, 보리 등의 음식을 먹으면 소화불량, 편두통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이탈리아 로마의 의사인 스티븐 R 건드리가 지은 ‘플랜트 패러독스’에 따르면 식물은 포식자에게 저항하기 위해 소화가 안 되는 성분을 만들게 되는데 렉틴(lectin), 피틴산(phytate), 섬유소 등이 그것이다. 렉틴, 피틴산 등이 함유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염증과 비만을 유발한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인류는 밀, 호밀, 보리, 귀리, 쌀 등의 껍질을 벗겨 도정해 먹었는데 10~20년전부터 웰빙 바람이 불면서 통밀, 현미, 통곡물 음식을 먹는 인구가 늘었다. 저자는 이는 잘못된 것이며 과거에 서양 귀족들이 흰빵은 자기가 먹고 소작농들에게 현미와 통밀로 된 갈색빵을 배급했던 것은 다 이런 이유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몸 속 다당류와 결합하는 렉틴은 혈관표피세포와 장, 대뇌, 신경말단, 관절, 체액 등의 다당류와 결합함으로써 세포간 교신을 방해하고 독성이나 염증반응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요컨대 쌀은 밀보다 렉틴, 피틴산 등이 훨씬 적다. 따라서 흡수가 잘 된다. 다수의 문화인류학자들이 서양의 밀이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동양인의 소화기관이 밀에 적응하는 데 무려 10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적응단계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동양인의 소화기관이나 유전자는 쌀에 익숙하고, 밀에는 아직도 낯설다는 얘기다. 

동의보감의 문구를 빌려도 묵은 밀가루는 풍(風)과 독(毒)이 있고 풍을 동(動)하게 한다고 적혀있다. 수입밀은 다름아닌 묵은 밀가루일 것이다. 일부 한의학자들은 서양인이 한국인보다 피부노화가 빠르고, 현대인들이 불임·생리통이나 만성 소화불량·장질환에 시달리는 것은 묵은 밀가루를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수입밀가루의 유해성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문제다. 장기간 해상 수송하려면 알게 모르게 적량 이상의 살균제, 살충제가 밀가루에 뿌려지기 마련이다. 안 뿌려진 것은 전혀 없다. 또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하얗게 만드는 표백제로 처리한다. 비닐봉지에 싸여 시중에 유통되는 빵이나 과자 등에는 무조건 방부제가 첨가된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게 서양 밀에 비해 키가 작은 신토불이 ‘우리밀’이다. 우리밀은 수입밀에 소화도 잘 되고 면역력 증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가격이 수입밀가루보다 3~4배 비싸다는 것이다. 밀가루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글루텐 알레르기나 동양인 체질에 부적합한 면을 알고 우리밀의 높은 시세를 감안한다면 양질의 쌀밥을 먹는 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요즘 현미가 백미보다 낫다며 즐겨먹는 사람이 많다. 현미엔 쌀 배아가 붙어 있고 외피에 섬유소가 풍부해 암 예방 등에 좋다는 견해다. 곡류의 종류가 무엇이든 과도하게 도정하고 곱게 정제하면 장게실이나 결장암을 유발할 수 있다. 서구인이 동양인보다 결장암이 많은 것은 고운 밀가루로 만든 음식과 육류를 많이 섭취하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현미밥이 일견 백미밥보다 건강에 유익할 것 같지만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현미는 영양소로만 보면 백미보다 우수하지만 외피 때문에 백미에 비해 소화율이 떨어진다. 백미는 녹말의 질이 좋아 소화흡수율이 100%에 가까우므로 필요한 열량을 공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무리 영양소가 좋아도 흡수되지 않으면 무용하다. 게다가 현미밥은 오래 씹어야 기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데 바쁜 현대인 가운데 이를 실천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씹는 힘과 횟수가 더 많이 드는 음식을 먹어야 지능이 좋아진다는 얘기가 있다. 씹을 때 치아와 턱에 미치는 자극이 뇌에 미쳐 지능이 발달된다는 이론이다. 이게 진실이라면 쌀밥처럼 낱알로 된 음식을 먹는 우리 민족은 빵이나 파스타를 즐기는 서양인보다 지능이 더 나은 식습관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남아도는 쌀을 활용하기 위해 쌀국수, 쌀파스타, 쌀볶음면 등을 개발, 보급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 쌀막걸리의 경우 제조업체 입장에서 더 싼 원료를 찾다보니 수입쌀로 빚어 만든다. 입맛이 고급스러운 소비자들은 겨냥해 키크는 쌀, 항노화 쌀, 살 빼는 쌀, 버섯쌀, 홍곡쌀 등 기능성 쌀을 내놓고 있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향토쌀 마케팅에 열심이다. 매일 즉석 도정, 즉석 밥짓기로 입의 호강을 즐기는 소비층을 늘리고 있다. 

1970년대 풍수해와 병충해에 강인한 통일벼 품종이 전국에 보급됐다. 순전히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과는 격세지감이다. 요즘엔 옛맛이 그리워 명맥이 끊겼다가 복원된 토종쌀을 찾거나, 밥맛이 부드러운 일본 유래 품종을 찾는 이가 하나둘 늘고 있다. 일제가 1910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토종쌀은 1451종이나 존재했고 거의 멸종됐다가 최근 30~40종이 부활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쌀밥 먹는 양은 한 공기 기준으로 1980년대 500㎖, 요즘 가정에선 300㎖, 젊은층이 다니는 도시음식점 200㎖로 점점 줄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시대에 건강을 추구하는 한, 잠재된 미각유전자가 발동하는 한 한민족과 쌀밥의 인연이 면면이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Tip. 쌀의 품종 

△자포니카종 : 둥근 타원형. 한국·일본·중국 북부에서 재배된다. 흔히 먹는 쌀 품종의 대부분. 밥을 하면 찰지고 윤기가 난다. 일본이 원산지이거나 일본 학자 학명을 붙인 품종.
△인디카종 : 길고 얇은 모양. 인도·태국베트남·미국 등에서 재배된다. 베트남 또는 태국 식당에서 만나는 밥으로 점성이 낮아 흔히 ‘날아간다’고 밥맛을 표현. 베트남의 옛 지명인 월남, 안남(安南), 인도지나 중 가장 많이 불리었던 안남을 따라 ‘안남미’라고도 칭한다. 
△자바니카종 : 자포니카종과 인디카종의 중간 형태. 동남아시아·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 재배된다.

Tip. 용도에 따른 쌀 종류
△멥쌀(밥과 사케 제조에 사용) 아밀로스 20%, 아밀로펙틴 80%로 구성
△찹쌀(떡, 과자 등에 사용) 아밀로펙틴이 95% 이상, 나머지가 아밀로스, 
* 아밀로스는 긴 사슬형인 반면 아밀로펙틴은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친 전분이기 때문에 조직이 느슨하고 부스러지기 쉬우며 효소에 의해 잘 분해된다. 따라서 찹쌀밥은 멥쌀밥보다 당지수(GI, 탄수화물에 분해돼 혈당으로 변화되는 양과 속도를 계수화)가 높아 당뇨병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찹쌀로 밥을 지으면 아밀로펙틴 구조가 훨씬 더 엉키고 단위 중량당 밀도가 높아져 찰기를 띠게 되므로 무조건 찹쌀이 멥쌀보다 소화가 잘 된다는 상식은 다사 연구될 필요가 있다.
△적미, 흑미, 녹미 : 옛날부터 재배돼온 고대미(古代米)로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아 항산화, 항노화에 유리. 적미에는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산이 많이 들어 있어 노화방지와 암·심장병 예방에 유익
△현미 : 탈곡 후 왕겨만 벗긴 쌀. 쌀겨층(미강) 5∼6%, 씨눈(배) 2∼3%, 배젖(백미) 92%의 비율로 돼 있다. 완전 도정하면 배젖 부분만 남는다. 지방, 단백질, 비타민B1·B2 등의 영양소 손실이 적으나 밥맛이 없고 소화가 어려우며 밥짓기와 씹어먹기에 시간이 한참 더 걸린다.  
△향미 쌀(냄새가 진한 쌀) : 별도의 품종이 있다. 동남아·서남아에 고유 품종이 있으며 한국·일본에도 소수의 품종이 존재. 저온에서 씨알이 여물 때 향기가 강해지지만 휘발성이어서 매일 소량 도정해 바로바로 먹거나, 찐쌀 형태로 즐겨야 향미를 느낄 수 있다.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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