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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 없다’ 외치던 나폴레옹, 치질엔 속수무책
입력일 2018-07-11 10:20:22 l 수정일 2018-09-09 18:29:05
직립보행 인간 항문질환 취약, 치핵 70% … 절제 최소화하면 통증·출혈 걱정 ‘뚝’

양형규 서울양병원장이 치핵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1815년 6월 18일 엘바섬에 유폐됐다 기적적으로 재기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1제국군 7만2000명과 아서 웰즐리(웰링턴 공작)가 이끄는 영국·네덜란드 연합군 6만8000명이 벨기에 워털루에서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전투가 절정에 이를 즈음 나폴레옹이 갑자기 엉덩이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전장을 이탈했다. 10년 가까이 앓았던 치질이 스트레스, 과로, 비위생적인 전장 환경으로 인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주치의는 급한 마음에 마약의 일종인 아편을 처방했는데 양이 과했는지 나폴레옹은 혼수 상태에 빠졌고 그 사이 전세는 급격히 영국군 쪽으로 기울었다. 뒤늦게 나폴레옹이 전선에 복귀했지만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 20년간 이어졌던 나폴레옹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나폴레옹 외에도 꽤 많은 위인이 치질으로 고생했다. 특히 앉아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던 왕이나 작가 직군에서 발생률이 높았다. 서양문학사 ‘시성’으로 불리는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극심한 치질 탓에 평생 음식을 적게 먹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봄봄’, ‘동백꽃’ 등으로 유명한 1930년대 대표 소설가 김유정도 중증 치질로 고생했다. 방에 앉아 있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해 엎드려 누운 자세로 지내는 일이 많았으며, 차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왕 중에선 ‘태양왕’ 루이 14세와 프랑스혁명으로 처형된 루이 16세가 치루를 앓았다. 세 차례 수술 끝에 완치된 루이 14세는 마지막 수술을 받았던 1668년을 ‘치질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다.


치질을 비롯한 항문질환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다. 네 발로 걷는 짐승은 하중이 전신에 고르게 분산돼 항문조직이 항문 밖으로 빠질 일이 없다. 반면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하중이 허리와 항문 주변에 집중되므로 중력에 의해 항문조직이 항문 밖으로 빠지기 쉬운 구조다.
 
보통 ‘3대 항문질환’이라고 하면 치핵·치열·치루를 의미한다. 대변이 부드럽게 나오도록 충격을 흡수해주는 ‘항문쿠션조직’이 항문 밖으로 밀려나오는 게 치핵, 항문 입구부터 항문 안쪽 치상선에 이르는 항문관 부위가 찢어진 질환이 치열, 항문선의 안쪽과 항문 바깥쪽 피부 사이에 구멍이 생겨 분비물이 누출되는 것은 치루다. 이 중 치핵이 전체 환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치질’하면 대부분 치핵을 의미한다.


치핵은 직장 점막과 항문 피부가 만나는 지점인 치상선 안쪽에 생기는 내치핵과 바깥쪽에 생기는 외치핵으로 구분된다. 외치핵은 통상적으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내치핵에 비해 증상이 가벼운 경우가 많다. 
내치핵은 보통 4단계로 나뉜다. 치핵조직이 탈출하지 않고 출혈만 있으면 ‘1도’, 치핵이 빠져나왔다가 변을 본 직후 저절로 항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2도’, 변을 다 본 이후에도 빠져나온 치핵이 들어가질 않아 손으로 밀어넣어야 되거나 한동안 누워있어야 들어가면 ‘3도’, 손으로 넣어도 잘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빠져 나오면 ‘4도’로 규정한다. 보통 3도 이상이면 생활에 불편을 느끼고, 4도가 되면 치핵이 항상 탈출돼 있어 가벼운 일상활동도 불편해진다.


1~2도 치핵은 변완화제, 식이요법, 통증치료, 약물치료, 배변습관 교정 등 보존적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보존적 치료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거나, 합병증이 동반되거나, 치핵 크기가 크거나, 3~4도 치핵이라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엔 치핵조직을 비정상 조직으로 여겨 완전 절제하는 방법이 주를 이뤘다. 표준치료법인 결찰절제술은 항문 밖으로 빠져나온 치핵조직과 주변 항문상피, 점막을 한꺼번에 절제한 뒤 봉합한다. 양형규 서울양병원장은 “결찰절제술은 술기가 쉽고 수술 시간이 짧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한 범위를 절제하므로 2차출혈, 수술 후 항문이 좁아지는 항문협착 등 후유증이 동반될 수 있다”며 “특히 항문피부 조직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많이 분포돼 이 부위를 잘라내면 통증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개원가에서 많이 사용하는 원형자동봉합기이용치핵절제술(SH, stapled hemorrhoidopexy)은 절제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지만 출혈·협착 등 합병증이 많고 재발률이 높다.


최근에는 치핵조직을 정상조직으로 보는 게 의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져 수술시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수술기법이 바뀌고 있다. 서울양병원이 실시하는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은 항문피부를 2~3㎜만 좁게 절개한 뒤 치핵조직을 상피를 남기고 도려내는 방식으로 제거하고, 남은 조직을 항문 위쪽 방향으로 거상시켜 원래 위치로 되돌린다. 기존 수술과 달리 항문쿠션조직·점막·상피 등을 가능한 적게 절제해 항문협착, 통증, 출혈이 적고 빠르면 수술 후 1~2일 안에 퇴원할 수 있다.


양 원장은 “치질 등 항문질환을 예방하려면 배변은 가급적 3분 이내로 마치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사무직군이나 운전을 오래하는 사람은 수시로 항문을 조여주는 케겔운동을 해주는 게 좋다”며 “술·담배를 줄이고 하루에 8컵 이상 물을 마시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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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기자 supersta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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