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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했던 청년의 ‘돌연사’, 원인은 심장박동 조절 유전자
입력일 2019-12-01 12:29:22 l 수정일 2019-12-09 00:12:56
동양인, 서양인보다 유전성부정맥 비율 10배 높아 … 긴QT증후군·브루가다증후군 대안은 ICD뿐

긴QT증후군 같은 유전성 부정맥은 자각증상이나 선행질환이 없어 첫 증상이 급사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하는 황망한 사례가 종종 있다. 특히 사망자가 20~30대 젊은층이라면 주변 지인들은 ‘아니 왜?’라며 더 큰 충격을 받기 마련이다.


지난 9월 3일 프로농구팀 서울 SK나이츠의 포인트가드 정재홍 선수(33)가 손목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병원에서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사망했다. 명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1월엔 트로트가수 진형(33), 지난해 12월엔 가수 맹유나 씨(31)가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2016년엔 음악신동으로 불리며 클래식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씨(31)가 부산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 중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정지로 숨을 거뒀다.


평소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사망하는 것을 돌연사(突然死)라고 한다. 돌연사는 급성 심장사(sudden cardiac death)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겨 급성 심장마비로 이어지면 길어도 한 시간 안에 사망할 확률이 높다.


최종일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코호트 분석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연간 국내 심장사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48.7명으로 아시아 평균인 37~43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흔히 심장사는 고령층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40대 이하 젊은층도 심장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2016년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급성 심장사 환자의 약 20%가 40대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급성 심장사의 가장 흔한 원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심실빈맥과 심실세동이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장박동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도록 심장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지거나 막혀 심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로 협심증, 심근경색 등이 해당된다. 협심증은 혈전에 의해 관상동맥이 좁아져 심장으로의 혈류 공급에 장애가 생기면서 호흡곤란과 흉통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심근경색은 관상동맥이 혈전에 의해 거의 완전히 막혀 흉통과 실신이 발생한다. 보통 급성 심장사의 60~70%가 허혈성 심장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허혈성 심장질환이 발생해도 심실빈맥이나 심실세동이 동반되지 않으면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 위험은 낮은 편이다. 심실빈맥과 심실세동은 심실 쪽 전기신호의 이상으로 심장근육이 30초 이상 빠르게 수축되는 상태로 실신 및 돌연사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보통 심실에 이상이 생기면 심방이 문제일 때보다 예후가 훨씬 나쁘다. 심방은 인체 각 조직에 있던 피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공간인 반면 심실은 심장에서 각 조직에 피를 내보는 곳이라 문제가 생길 경우 호흡곤란이나 뇌·심장 기능저하가 훨씬 빨리 나타날 수 있어서다.


인종별로 급성 심장사의 원인이 조금 다르다.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급성 심장사 원인 중 허혈성 심장질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신 유전성 부정맥 등 유전성 심장질환의 비율이 10배 이상 높다. 2016년 대한심장학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급성 심장사 원인 중 유전성 부정맥이 차지하는 비율은 동양인이 약 10%로 서양인의 1~2%보다 최대 10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아시아인 중에서도 유독 유전성 부정맥의 발생위험이 높은 편이다. 2018년 대한심장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최종일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7~2015년 국내 급성 심장마비 환자 1979명 중 290명(14.7%)이 유전성 부정맥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성 부정맥은 선천적인 유전자 이상으로 평소엔 아무 증상이 없다가 갑작스럽게 심장의 전기신호에 이상이 생겨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질환이다. 최 교수는 “선천성 심장질환과 달리 심장과 혈관의 외형이나 기능엔 이상이 없어 예측이 쉽지 않다”며 “주로 35세 전후 젊은 연령에서 발생하는데 자각증상이나 선행질환이 없어 첫 증상이 급사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유전성 부정맥은 긴QT증후군(Long QT syndrome), 브루가다증후군(Brugada syndrome)으로 구분된다. 긴QT증후군은 심장에서 칼륨·나트륨 등 이온물질의 이동에 관여해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유전자인 ‘hERG(human ether-a-go-go related gene)’가 변이돼 발생한다. 이 유전자가 변이되면 심장박동 간격이 지나치게 길어져 실신, 발작, 급사로 이어질 수 있다. 운동을 과격하게 하거나, 심리적 스트레스를 지나치게 받으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아급사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e, SIDS) 원인의 10%가량을 차지한다. 긴QT증후군은 심전도(OPQRSTU 분절로 이뤄짐)에서 QT간격(QT interval)이 정상(0.35~0.44초)보다 길어 심실에서 온몸에 내보내는 혈액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다.


브루가다증후군은 hERG 유전자처럼 나트륨 등 이온물질의 이동에 관여하는 ‘SCN5A’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긴QT증후군과 달리 가만히 휴식하거나 잠을 잘 때 갑자기 심정지가 올 수 있다. 최근 며칠간 과로한 뒤 피곤한 상태로 잠을 자다 그대로 사망하는 사례가 많다.


돌연사를 유발하는 유전성 부정맥은 딱히 전조 증상이 없고 대부분 급사로 이어져 마땅한 진단 및 치료법이 없다. 최선은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같은 유전자 패널검사로 고위험군을 선별 진단한 뒤 ‘삽입형제세동기(implantable cardioverter defibrillator, ICD)’를 이식하는 것이다.


윤창환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ICD는 원래 심실세동 등에 의한 심정지 환자나 구조적 심질환 환자가 심정지를 겪은 후 회복됐을 때 재발 방지 목적으로 삽입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심장기능이 저하된 환자를 대상으로 급성 심장사 예방을 위해 이식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ICD 이식에 보험급여가 적용돼 환자는 비용의 5%만 부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유전성 부정맥 고위험군은 ICD를 빨리 이식할수록 돌연사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며 “실신 또는 급성 심장사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빠른 시일 내에 병원을 찾아 심전도검사를 받고 향후 치료 대책을 세우는 게 좋다”고 밀했다. 이어 “현재 유전성 부정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극히 낮은 상태로 돌연사 위험성과 치료법에 대한 전방위적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돌연사 예방을 위해 금연, 식생활 개선은 필수다. 윤 교수는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젊은 환자는 예외없이 흡연자”라며 “흡연은 유전적 요인 외에 심장이상을 유발할 수 있는 주요인으로 가급적 빨리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가 젊다고 건강을 자신하지 말고 지금부터 고지방·고당분 음식 섭취를 줄이고, 1주일에 150분 이상 빠르게 걷기 등 유산소운동을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정환 기자 superstar@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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