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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아름다움에 취한 중년의 푸념
입력일 2019-12-28 21:59:32
보급형·획일적 한옥 말고 개성 넘치는 나만의 한옥 지을 방법 없을까

서울 북촌 가회동 백인제 가옥의 사랑채와 앞뜰

2010년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한참 전인 2000년대 초반 부모님을 모시고 안동하회마을에 다녀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때야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기자의 고향인 전주에는 제대로 된 한옥이 없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 서문 쪽 읍성 밖에 살던 왜인들이 일제 강점기에 자꾸 시내로 진입하려 하자 당시 전주 양반들이 한옥 700여채를 밀집해 지어 전주인의 자존심을 살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 전주에 그렇게 양반이 많았었는지는 의문이다. 선조 22년(1589)에 일어난 ‘정여립의 난’ 이후 사실상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상징이 무색하게, 배척받았다.


정치권력에서 멀어지니 양반도 퇴축됐다. 그저 전주의 양반이란 영남 등 타지 출신의 벼슬아치를 받들며, 정쟁을 멀리하며, 문화적·경제적 여유를 향유하는 중반층에 불과했다고 본다. 전주에 유명한 서원 하나 없는 게 그 증거다. 정치권력을 잡아야 축재한 뒷돈으로 괜찮은 한옥을 지었을 터인데 그렇지 못해 내로라할 한옥 고택이 한 채도 없는 게 전주의 슬픈 모습이자 한(恨)이다.


전주 한옥마을이란 기왓장은 시멘트 재료에, 창호지 대신 유리창이 달린 개량한옥이다. 안동 등 영남의 한옥에는 견줄 수 없는 한옥 모양의 집이다. 그러다가 서울에 직장을 잡고 내 차를 사고 전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보니 한옥이 참된 멋스러움을 실감했다. 왜 아버지가 생전에 “집을 지으려면 한옥이지, 양옥이야 다 뻔한 것 아니냐”는 말씀을 자꾸 했는지 깨닫게 됐다. 어렸을 땐 “추운 한옥이 뭐가 좋아요. (실내 밀폐가 잘 돼) 뜨끈뜨근한 양옥이 좋죠”라며 반론을 제기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웅장한 한옥의 표상인 고궁이나 대찰의 대웅전 같은 것은 워낙 규모가 크고 생활가옥이 아니다보니 친숙해질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다 하회마을, 담양 소쇄원, 아산 외암마을, 양동마을 등을 둘러보고 주변의 지형에 어울리는 지붕과 처마의 아름다움, 안채·사랑채·행랑채에 정원과 연못이 어우러지는 배치의 조화, 석축·계단·댓돌·마루·정자의 공간미, 자연친화적인 소재나 설계, 창호나 문살에 담긴 정취, 심심한 유유자적을 이끌어내는 분위기에 취하게 됐다.


그래서 한옥을 지어보고 싶었던 선친의 소원이 나의 버킷리스트 ‘넘버1’이 됐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옥 건축비는 양옥의 3배나 든다. 평당(3.3㎡) 한옥 건축비는 1000만~1500만원 수준이다. 이는 양옥 건축비의 2~3배에 해당한다. 보급형 한옥은 약 600만~800만원 정도인데 보급형을 과연 정취가 느껴지는 고전적 한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서울 은평구의 한옥마을은 고전 한옥 건축비의 60% 수준에 지어졌는데 연노랑빛의 획일적인 스타일에 인위적인 밀집으로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이 결여돼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목재 등 자재가 전부 외국산이란 비판도 듣지만 정작 본질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북한산 자락을 배경으로 갖고 있는 게 매력이다.


한옥 장인은 자연의 배경에 맞춰 그에 어울리게 한옥을 설계하고 집의 주된 색채를 정한다. 그러나 비용 절감을 우선해야 하는 보급형은 설계나 재료 선택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옥을 개성 있게 짓는다고 양옥의 서구화된 세련미와 실용성을 너무 가미하면 고유의 멋이 없어질 것이고, 보급형으로 지으면 그윽한 전통의 향기가 덜 나게 마련이어서 미적 전통도 살리고 비용효과성도 만족할 방법을 찾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 한옥 전문가는 “지금 하회마을 한옥처럼 지으려면 평당 3000만원 건축비를 들여도 어렵지. 한옥의 멋을 알면 알수록 고가의 자재나 수준 높은 목공을 써야 하는 거라 욕심을 내면 한도 끝도 없다”고 말했다. 또 건설사 노무팀장은 “한옥 목공은 건성건성 일하는 것 같은데 하루 일당으로 50만원이나 받아요. 한옥 건축비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는 한옥학교라는 것을 알아봤다. 죄다 서울에서 먼 외진 곳이고, 몇 개월씩 기숙사에 입소해야 하는 곳이 대다수다. 양옥 목조건물 짓는 것과 병행하는 곳도 있고, 어디가 교육을 잘한다는 평판도 얻기 어려웠고, 다만 교육비에 국비가 지원되고 과정을 이수하면 전문가로서 활동폭이 넓다는 얘기만 들린다. 문화재 복원을 위해 설립된 충남 부여의 국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같은 곳에 들어가기엔 나이와 힘이 허락하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는 게 아무래도 맞을 것 같다.


10여년 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장의 멋을 살려내기 위해,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또는 특색 있는 귀농귀촌 사업의 하나로 한옥짓기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방재정이 넉넉한 곳은 최대 2억원(전남 나주시), 전주시를 둘러싼 완주군처럼 가난한 곳은 겨우 3000만원을 지원한다.


각 지자체는 가급적 한옥을 일정 구역에 모여짓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각 집터가 산세와 강이나 호수에 어우러지게 흩어지는 것을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더욱이 각 지자체마다 기준이 정해져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지원비를 환수하는 규정도 갖고 있다.


결국 양옥과 한옥을 하이브리드한 집을 짓는 게 현실적일까. 한옥 그 자체보다도 주변의 가드닝을 잘 해 보급형에 가까운 한옥을 멋스럽게 보이는 게 나을까. 서울 은평구의 보급형 한옥도 세월의 더께가 앉으면 북촌의 한옥처럼 고풍스러워질 수 있을까. 한옥 건축이 대중화, 대형화되면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가 더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등을 생각해본다.


지난 8월에 찾은 북촌 가회동 백인제 가옥에서 어렴풋이 그 해답을 찾은 듯하다. 그러나 한창 일할 나이인데다 재력이 부족해 꿈만 꾼다. 이렇게 꿈꾸는 과정이 오히려 더 행복할지 모른다. 한옥의 매력을 살렸는데 서구적 아름다움을 훔쳐내고, 수입 자재와 시멘트·유리를 썼는데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인공으로 정원과 연못을 만들었는데 자연 형성된 것보다 더 조화·균형·절제를 갖춘 한옥을 그리며 속세의 풍파를 하루하루 이겨낸다.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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