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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 예찬론 … 자기사랑 없인 ‘자연인’ 못 돼
입력일 2019-10-23 17:34:05
시끄럽고 각박한, 공정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서 중년 남자에 위안 줘

정종호 헬스오 기자

3년 전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눈에 띈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애시청자가 됐다. 자연인은 법률적 의미로 법인이나 재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즉 노예가 아닌 사람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다.


이에 비해 MBN 프로그램의 ‘자연인’이란 해발 500m가 넘는 외진 고지에서 또는 무인도 등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물론 쌀 등 기초적인 먹을거리는 외부에서 조달하지만 푸성귀, 생선이나 민물고기, 가금류, 약초류, 계란, 패류 등은 스스로 조달하는 자급자족적인 삶을 산다.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이같은 몇몇 조건을 갖춰야 자연인으로 인정하고 촬영에 나선다고 한다.


프리미엄 건강기능식품 대기업 홍보담당자에 들어보니 MBN이 이 프로그램 기획안을 들고 제작 협찬을 요청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 한다. ‘뭐 이런 거지 같은 프로그램에 귀족적인 우리 제품을 광고할 수 있냐’고 의견이 모아져 결국 협찬을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워낙 이 프로의 인기가 좋아 ‘장기 계약으로 저렴하게 협찬해줄 걸 그리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기자가 보는 ‘자연인’의 유형은 크게 4가지다. 사업 실패·이혼·사별·실연·배신·사기 등으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영혼이 피폐해져 자연에 귀의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다음으로 병들어, 사고로 육신이 다쳐 죽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자연의 기를 받아 병마에서 회복하고 속세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꽤 된다. 그 다음으로는 젊어서부터 객지에 나가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자연으로 정년 은퇴한 비교적 마음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부류다. 끝으로 머리부터 뼈속까지 원기가 충만하고 장난기가 발동하며 낭만을 추구하는 태생적인 기질의 자연인이다.


먹고 사는 모습을 보니 어떤 이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먹는 데 무척 신경쓰는가 하면, 소수는 자유를 추구하느라 식생활을 등한시한다. 이 때문에 제작진이 촬영하러 갔다가 맛있는 것도 대접받지 못하고 생쌀이나 겨우 얻어 먹으며 굶주림을 채우는 모습도 어쩌다 나온다.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을 보니 오래된 폐옥을 개조하거나 헌 자재를 구해다가 만든 집에서 사는 부류가 가장 흔하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헌 자재라도 자연인의 건축 솜씨로 세련되고 깔끔하게 단장한 거처는 볼 만하다. 소담한 한옥이나 거창한 양옥에서 기거하는 자연인도 드물지 않다.


기자가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늙어 귀향해서 한옥이라도 짓고 세속의 때를 벗겨내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구조가 효율적이고 마음이 평안한 집을 손수 지을지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 멋진 한옥 스타일의 자연인 집이 나오면 머릿속에 넣어 놓고 구상의 나래를 펴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때문에 멋진 집이 나오면 재방, 삼방도 보는 편이다.


더욱이 그림 같은 집이 전방의 탁 트여 풍광을 갖고 있으며, 잘 가꿔진 텃밭이나 꽃밭이 아름답고, 먹을거리의 보고인 닭장과 연못까지 곁에 두고 있으면 나도 한번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진다. 또 자유를 만끽하며 덜 생산하고 덜 소모하고 쓰레기를 거의 남기지 않고 대부분 리사이클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삶이 나의 지향점과 일치한다. 


지난해 겸업으로 자정 전후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던 기자는 출출한 배를 간단한 식사와 와인 한두 잔으로 채우며 ‘나는 자연인이다’를 봤다. 큰 위로가 됐다. 나도 사업에 망하면, 병이 들면, 처자식과 이별하면 자연인처럼 훌훌 털고 산으로 올라가리라. 결코 외롭거나 슬프지는 않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프로그램을 봤다.


기자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지난 6월 종합편성채널로서는 처음으로 ‘나는 자연인이다’가 지상파를 물리치고 시청률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이상 남성의 14%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외진 산속 또는 무인도 등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상사에 찌든 중년 세대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이 프로그램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이런 남자를 배우자로 둔 아내다. 기자만 해도 이 프로그램을 보느라 삼매경에 빠져 있으면 아내가 눈을 흘깃흘깃하고 잔소리가 심해진다. 내가 처자식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갈까봐 걱정되어서일까.


이 프로엔 인간의 생로병사와 불교의 사고(四苦 :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가 녹아 있다. 인생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진행자인 윤택과 이승윤의 각기 다른 개성도 지루하지 않다. 윤택은 건들거리듯 툭 던지는 말이 일품이고, 이승윤은 단순하고 착해 보이는 게 매력이다. 성우 정형석의 내레이션도 구수한 맛을 더한다.


그런데 냉철하게 살펴보면 중년 남성들이 이 프로그램에 빠지는 데에는 사회구조의 모순이 크게 반영돼 있다. 앞으로도 안정된 삶을 구가할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상대적으로 돈 쉽게 벌고 잘 나가는 경쟁자를 보며 위화감을 느끼고,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처럼 공정·정의·언행일치와 같은 이상이 현실과 괴리됨을 절감하는 게 중년 남성들이다.


몇 달 전 출근길 라디오방송에서 한 MC가 “자연인을 프로그램으로만 보고 동경해야지, 정말 따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라고 사견을 펼쳤다. 맞는 말이다. 세상사 듣기 싫고 보기 싫으면 자연에 귀의해서 귀 닫고 눈 감고 살면 된다. 그렇지만 전체 인구의 5%만 이렇게 살아도 아마 국망(國亡)에 이를 것이다.


일부 방송평론가들은 자연인 출연자 다수가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와 도리를 버린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꼬집는다. 심지어 범죄자도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자도 이런 점을 고려해 균형감을 갖고 자연인 프로를 보려 애쓴다.


다행히 전체 인구 중 자연인 비율은 일단 1%가 안 되는 게 확실해 보이고 아직은 0.1% 미만으로 짐작돼 안심이다. 자연인을 동경하지만 속세를 버리고 갈 수 없는 다수의 일반인 덕분에 이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자연이 단 둘이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자기를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자연인이다는 믿음에 엄지척을 올린다. 이기적이어야 행복한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정종호 기자·약학박사 help@heal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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